[시사풍향계-이철호] GMO의 과학적 진실
입력 2013-05-01 19:40
“과학적 전문지식이 없는 시민단체에서 안전성 문제를 다루는 것은 부적절”
유전자재조합생명체(GMO)에 대한 소비자의 불안감이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GM(유전자재조합)작물이 상업적으로 재배되고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수억 인구가 지난 20여년 동안 GM옥수수와 GM콩을 먹고 있지만 한 건의 부작용도 보고된 바가 없는데도 일부 소비자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고 있다.
2년 전 한국식품과학회 총회에 초청된 미국 캘리포니아대학(UC Davis)의 한 교수가 GMO의 안전성과 이용에 대해 강연한 후 청중석에서 ‘한국에서는 학계에서 꼭 같은 이야기를 해도 국민이 믿지 않는데 미국에서는 어떻게 아무런 표시도 없이 전 국민이 GM식품을 먹고 있느냐, 무슨 묘책이라도 있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 교수는 두 가지를 말했다.
하나는 미국 국민들은 정부를 믿는다는 것이다. 정부가 충분히 연구 검토하여 안전하니 먹어도 된다고 했으므로 국민은 믿고 먹는다는 것이다. 둘째는 GMO가 연구 개발될 때 그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했으며 특히 국민이 신뢰하는 전문가 그룹, 예를 들면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전문인과 과학계에 집중적으로 자료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상황과는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인다. 우리는 정부가 안전하다고 수입을 허용했으나 국민은 믿지 못하고 있으며, 과학적 전문지식이 없는 시민운동 단체에서 주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지난 1월 3일 GMO의 사용을 반대해 오던 영국의 환경운동가 마크 라이너스(Mark Lynas)가 옥스퍼드농민대회에서 GMO 반대운동에 앞장서온 자신의 행동이 과학을 무시한 잘못된 것이었음을 시인하고 공개 사과했다.
마크 라이너스는 에든버러대학에서 역사정치학을 공부한 인문학도로 과학의 깊은 지식이 없이 1990년대 중반부터 GMO 반대 운동에 앞장섰다. 당시 유럽 국가들은 WTO 무역자유화로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어 미국이나 중남미국가에서 들어오는 값싼 GM곡물로부터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GMO의 안전성 논란은 국익에 부합되는 일이었다. 유럽연합은 GM농산물에 대한 표시제를 강화함으로써 값싼 외국 농산물의 수입을 막는 무역장벽으로 활용하고 있다.
유럽의 대부분 과학자들도 GM식품의 표시문제는 정치적인 문제이지 안전성에 대해서는 이제 더 이상 논의할 게 없다고 말한다.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대세로 받아들여지자 일부 시민단체에서 소비자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표시를 확대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식량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에서 유럽의 표시제를 따르자고 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세계 곡물시장에서 non-GM콩이나 옥수수를 살 수 없는 상황에서 이들 작물에 대한 불안감을 부추기고 표시를 확대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국가 식량수급에 큰 어려움을 주는 행동이다.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일본이 현재의 표시제도를 고수하고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국민이 불안해하는 상황에서 거의 모든 식품에 ‘GMO’라고 표시했을 때 발생할 국가적인 혼란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보다 앞서 GMO의 안전성에 대한 국민교육을 충분히 하여 불안감을 불식시키는 일이 급선무이다.
일부 운동가들은 몬산토와 같은 공룡기업이 GM종자 특허로 세계 농업을 지배하고 농민을 착취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대단히 우려되는 바이다. 그러나 그것과 GM작물의 안전성이나 표시 문제는 별개의 것이다. 공룡기업의 횡포를 막고 식량주권을 확보하는 일은 국제정치가 해야 할 몫이다. 정치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과학자는 과학기술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소설 ‘식량전쟁(식안연, 2012)’이 말하는 해결책이 꿈처럼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이철호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