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정원교] 중국 특색 재난 구조

입력 2013-04-30 19:21


‘루산 지진’ 이틀 뒤인 지난달 22일 이른 아침 쓰촨(四川)성 야안(雅安)시에서 루산(蘆山)현으로 나가는 길. 차들이 한꺼번에 몰려 한 치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구호품을 실은 트럭, 군부대 차량, 긴급구조차, 통행증을 발급 받은 일반 차량….

노선 버스나 택시는 물론 일반 차량의 운행을 전면 금지했는데도 이 정도라니. 야안 시내에서 통행증을 차 앞 유리창에 붙인 SUV에 편승하고는 한숨 돌린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지체할 새 없이 ‘오토바이 부대’를 찾아 가격을 흥정한 뒤 50여㎞ 떨어진 루산현 룽먼(龍門)향으로 향했다.

지진이 할퀴고 간 계곡 밑으로는 붉은 흙탕물이 흐르고 있었고 구불구불한 산길 주변 마을은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울컥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곤 흠칫 놀라기도 했다. 길옆 절벽에서 여진으로 바위라도 굴러 떨어지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도 몰려왔다.

오토바이 뒷자리에 걸터앉는 게 엉덩이와 허리 통증을 얼마나 유발하는지는 그 뒤에 깨달았다. 어깨에 멘 노트북 컴퓨터, 카메라, 물, 비상식량 등이 든 묵직한 배낭이 오토바이 뒷부분에 설치된 사물함에 얹히는 상태가 되면서 상체를 앞으로 밀어붙여 더욱 그랬다.

지진 참사 열흘이 지난 지금도 현장에서는 방재와 구호 및 구조 작업 등으로 정신이 없다. 초기 대응은 5년 전 이맘때쯤 발생한 원촨(汶川)대지진 당시보다는 체계적이었다는 평이다.

그러나 ‘중국 특색 재난 구조’라는 말은 여전히 나온다. ‘특색’이라는 표현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중국만의 방식’을 의미하지만 긍정뿐 아니라 부정적인 뜻으로도 쓰인다. 무엇보다도 국가 지도자들의 활동이 부각되고 인민해방군과 무장 경찰이 대규모로 동원되는 건 익숙한 장면이 됐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겸 군사위주석이 지진 당일 정오에 중앙군사위를 소집해 군·경의 신속한 피해 지역 투입을 지시했다는 사실은 지진 초기 중국 언론에서 제일 강조되는 부분이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현장에서 일회용기에 담긴 죽 등으로 아침 식사를 하는 모습이 국영 CCTV 화면을 타자 일부 네티즌들은 쇼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쓰촨위성TV는 또 왕둥밍(王東明) 쓰촨성 서기의 구호 활동을 전하기에 바빴다. 중국 정치 체제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웨이보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 시작한 상황에서 이런 모습은 지속될 수 있을까.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는 지진 열흘째를 맞은 29일 장정(長征) 시기 홍군이 거쳐 갔던 지진 피해 마을 얘기를 전했다. “인민해방군이 왔다. 이제 희망이 생겼다!” 르포 기사는 “인민들이 이렇게 외친 것은 인민해방군이야말로 영원한 신뢰의 대상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썼다.

이런 과정을 통해 외부의 도움 없이 당과 국가가 인민의 삶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는 일단 성공한 것 같다.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 당국이 러시아 구조대를 포함해 외국 지원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이러한 계산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언론은 국가적인 재난을 절묘하게 국민 통합의 기회로 만들어 내는 주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정부와 군이 주도하는 돌격대식 재해 구호만 효율적인 수단이라고 앞으로도 주장할 수 있을까. 그 탓인지 이번에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은 조직화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