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전 DJ 낙선공작, 北風사건과 닮은 꼴?
입력 2013-04-30 18:37 수정 2013-04-30 22:31
“다시는 국가 정보기관의 선거개입이나 정치관여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엄벌에 처한다.”
1998년 9월 ‘북풍공작 사건’으로 기소된 권영해 전 국가안전기획부장에게 법원이 징역 5년을 선고하며 밝힌 내용이다. 안기부는 이 사건 이후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새 출발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15년 만에 국정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다시 검찰 수사 대상이 됐다. 현재까지의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 사건 흐름은 북풍사건 때와 비슷한 양상이다. 그 결과 역시 권 부장을 비롯해 안기부 간부 10명의 구속기소로 마무리된 북풍 수사 때와 비슷할까.
◇15년 전의 정치공작=15대 대선을 앞둔 97년 12월 6일 안기부는 권 부장 주재로 비밀회의를 열고 야당의 김대중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한 전략을 짰다. 이른바 ‘아말렉 작전’이었다. 안기부는 이후 월북자인 ‘오익제 편지’ 사건, 재미교포 윤홍준씨의 기자회견 등을 잇따라 실행하며 김 후보와 북한의 연루설을 퍼뜨렸다. 그러나 결국 김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했고, 정부 출범과 동시에 진상조사가 시작됐다. 안기부를 장악한 새 정부는 안기부 구세력에 대한 강도 높은 감찰을 벌여 그 결과를 검찰에 넘겼다. 검찰 수사 지휘는 현 국무총리인 정홍원 서울지검 남부지청장이 맡았다. 검찰은 98년 3∼5월 본격 수사를 벌인 끝에 북풍 사건을 ‘북한의 대남 정치공작과 이를 역이용한 안기부의 정치공작이 결합된 사건’으로 규정했다. 권 부장은 안기부법·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됐고, 공작에 가담했던 안기부 1차장 등 간부들도 같은 혐의로 처벌을 받았다. 대법원은 99년 관련자 전원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북풍과는 성격이 다르다”=국정원이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기는 북풍사건 이후 처음이다. 2005년 ‘안기부 불법도청’ 사건 때는 핵심 연루자들에게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두 사건은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일에 대해 새 정부 출범 초기에 벌인 수사이고, 핵심 쟁점 역시 정보기관이 조직적으로 대선에 개입했는지 여부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현 수사도 초기부터 원세훈 전 원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줄소환되고 있다. 그러나 한 검찰 간부는 “북풍 때와 지금은 사안 자체가 다르다”며 “그때는 노골적인 정치 공작이었다면 이번에는 국정원의 정상적 직무 수행인지, 정치개입인지 논란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인터넷 ‘댓글 작업’ 등이 국정원법이 정한 직원 직무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판단될 수 있지만, 명확하게 특정 정치인을 지지 또는 반대하는 불법행위가 있었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설명이다. 북풍사건은 정권교체가 있은 뒤 수사가 진행됐지만, 지금은 기존 여당이 재집권한 상태라는 점 역시 최종 수사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