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님 지시’ 문건 찾아라”… 혐의 입증 예견된 수순

입력 2013-04-30 18:38 수정 2013-04-30 22:30


검찰이 30일 국가정보원을 압수수색한 것은 예견됐던 수순이다. 검찰은 ‘원세훈 국정원’의 정치개입 의혹 수사의 성패가 이번 압수수색을 통해 유용한 증거물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국정원이 상부 지시에 따라 조직적으로 선거·정치에 관여한 정황을 보여주는 내부 문건이나 자료 물색에 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압수수색 꼭 필요했다”=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검찰조사를 받던 지난 29일 법원에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 심리정보국을 비롯한 국정원 내 ‘여러 곳’이 대상이었다. 원 전 원장 진술 내용에 따른 후속 조치는 아니라고 했다. 애초 원 전 원장 등 핵심 인물들에 대한 1차 조사를 마무리한 뒤 바로 국정원 내부 진입을 감행한다는 전략을 세워놨다는 의미다. 이후 민모 심리정보국장 등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압수 대상을 구체화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이것저것 필요한 자료가 있어서 수사 초기부터 (압수수색을) 실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개인 사무실도 아니고 국가 기관이라 세밀하게 준비했고, 연구도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압수수색은 기본적으로 국정원 심리정보국 요원들이 ‘오늘의 유머’ 등 인터넷 사이트에 조직적으로 정치 관련 댓글을 단 증거물 확보를 위해서다. 검찰은 “공안 사건은 특성상 자백에 의존하는 수사는 안 한다. 혐의를 설명해 줄 증거물이 필수”라고 말했다.

검찰은 경찰 송치 기록이나, 야당 등을 통해 공개된 자료보다는 내부 대책회의 기록이나 비공개 지시사항 등 기밀 자료를 찾아내는 데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 수뇌부가 실제 특정 의도를 갖고 선거나 정치에 개입하려 했다면, 흔적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은밀하게 작업했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경찰이 ‘처벌이 어렵다’고 판단했던 선거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려면 조직 차원의 ‘기획’이 있었음을 밝혀줄 증거가 필요하다는 시각이 많다. 검찰이 “댓글 하나하나의 내용은 큰 의미가 없다.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검찰로서는 ‘상징적’ 효과를 기대했을 수도 있다. 끝내 관련자 기소에 실패하더라도 압수수색까지 하며 법이 정한 최선의 노력을 했지만 사법처리는 어려웠다는 명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향후 압수물 분석과 관련자 조사를 병행하며 수사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박근혜 후보 불리한 글 집중 반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이날 국정원 직원 김모씨 등이 댓글 달기를 했던 인터넷 사이트 ‘오늘의 유머’ 데이터 1480만개를 분석한 결과, 국정원 직원이나 보조 요원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디(ID)가 73개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민변에 따르면 이들 ID의 전체 ‘반대행위’ 1467건 중 1100건(75%)이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불리한 글에 집중됐다. ‘오유’ 게시판은 게시글에 달리는 추천, 반대 비율에 따라 주목도가 높은 ‘베스트 게시물’에 올라가는 평판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민변은 “당초 알려진 3명보다 많은 최소 4명이 동원됐고 총 8개 그룹이 특정 후보를 위한 여론전을 벌였다”며 원 전 원장 등을 추가 고소·고발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