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남자의 방송사 사기극… ‘거짓 사연’으로 8000만원 챙겼다
입력 2013-04-30 18:17 수정 2013-04-30 18:18
지난 2월 한 방송국 라디오 프로그램 게시판에 ‘그냥 웃지요’란 제목의 사연이 올라왔다. 자신을 갓 결혼한 새댁이라 소개한 아이디 lig***의 청취자는 “지난 명절에 음식 하는 게 싫어서 차를 몰고 나가 경운기와 교통사고가 난 것처럼 꾸몄다. 자작극 덕에 명절 내내 병원에서 시누이들이 해온 음식을 먹으며 보냈다”고 했다.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았으니 이름은 비밀로 해 달라”고 덧붙였다.
이 글이 주부들의 공감을 얻자 제작진은 프로그램에 사연을 소개했고 글쓴이에게 세탁기와 밥솥 등을 선물했다. 하지만 실제 이 글을 쓴 사람은 엉뚱하게도 40대 남성으로 밝혀졌다. 남의 주민번호를 도용해 방송국에 거짓 사연을 보내고 선물을 타가는 상습범이었다.
서울 종암경찰서는 30일 거짓 사연으로 방송국에서 8000만원 상당의 상품을 받아 챙긴 이모(42·무직)씨를 절도 및 주민등록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씨는 2006년 4월부터 최근까지 KBS MBC 등 방송국 라디오 프로그램 사이트에 다른 사람의 인적사항을 도용해 회원으로 가입한 뒤 인터넷에서 퍼온 글이나 지어낸 이야기를 자기 사연인 것처럼 올려 선물을 챙겼다. 7년간 6000여 차례 사연을 보냈고 2000여개 선물을 받아 인터넷 중고매매 사이트에서 정가보다 20% 정도 싸게 팔았다.
이씨는 전단지 부착 아르바이트를 하며 남의 집 우편물이나 재활용 폐지 등을 뒤져 개인정보를 수집했다. IP 추적을 피하기 위해 동사무소나 병원의 민원용 컴퓨터, PC방 등에서 방송국 사이트에 접속했다. 상품 수령 주소는 집 앞 상점으로 적거나 허위로 기재한 뒤 택배 배달원에게 주소지를 변경해 달라고 연락하는 등 치밀함도 보였다.
경찰은 지난 16일 이씨를 검거하며 아직 판매하지 않은 2t가량의 선물도 압수했다.
김미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