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태어난 생명까지”… 법 심판대에 선 낙태의사

입력 2013-04-30 17:59 수정 2013-04-30 22:09


아기들은 재판정에서 이름이 없었다. 담당 검사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낙태 시술을 한 의사 커미트 고스넬(72)의 잔인한 수법을 29일(현지시간) 열거하며 아기들을 A, B, C, D, E라고 불렀다. 알파벳 자음 한 자로 불린 아기들의 운명은 다음과 같았다.

아기 A가 숨지기 전 마지막으로 들은 얘기는 “걸어 다닐 정도로 덩치가 크네”라는 고스넬의 농담이었다. 변기에 버려진 아기 D는 물속에서 헤엄치는 듯한 동작을 한 후 낙태됐다. 아기 E는 있는 힘껏 울다 죽었다. “우리 집 아기처럼 찡찡대며 우는 군.” 고스넬은 E를 처리하며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고스넬은 엄마 뱃속에서 다 자라 막 세상을 보기 위해 나오던 태아를 살해했고, 24주를 넘긴 태아를 24회 낙태했다. 펜실베이니아주 법이 정한 낙태 가능 태아 연령은 24개월 이하다.

“낙태 과정이라도 자궁 밖에서 태아의 심장이 뛰며, 숨을 쉬고, 울며, 움직이는 등 살아 있다고 여겨지는 어떤 상징이라도 보이면 시술을 중단해야 한다.” 검사는 펜실베이니아주 법을 인용, 고스넬의 불법성을 설명했다. 검찰 측은 이 병원에서 쓰던 불결한 시술 테이블과 부서진 의료 집기를 선보였다. 지방 검사보는 스테인리스 초음파 탐촉자를 흔들며 역겨움을 드러냈다.

고스넬이 이민자와 소수 인종이 밀집한 빈곤한 필라델피아에서 수십년간 범죄 행위를 지속하는 동안 의료 당국의 감시는 속수무책이었다. 고스넬은 신생아 7명을 살해하고 진통제 과다 투여로 임산부 1명을 사망케 하는 등 8건의 살인 혐의로 2011년 기소됐다. 지난 5주간의 공판에서 말로 설명하기 힘들 만큼 잔인한 낙태 수법을 들은 배심원들은 30일 심의를 할 예정이다.

이번 사건으로 가장 민감한 이슈 중 하나인 낙태 문제로 미국 사회가 다시 들썩이고 있다.

낙태 반대 진영에서는 현행법보다 더욱 낙태를 제한하는 입법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낙태 반대 시민단체인 ‘수잔 비 앤소니 리스트’는 20주 이상의 모든 태아에 대한 낙태 금지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의원 설득 작업을 하고 있다.

자궁 내에서의 낙태는 합법적이고, 자궁 밖에서 행해지는 비슷한 행위는 왜 살인으로 여겨지는지에 대한 철학적 이슈도 제기됐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낙태 반대 운동을 하는 ‘펜실베이니아 가족 협회’ 측은 “이들 행위 사이에 (자궁) 10인치라는 신체적 공간, 시간적 차이밖에 없다”며 “태어나지 않은 아기 인권에 대한 논쟁이 부활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낙태 옹호론자들은 현행법보다 낙태가 제한되면 임신부들이 고스넬처럼 위험한 의사에게 시술받을 수밖에 없다며 이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