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서 북한사람과 대화했다 간첩 몰려… 30년만에 벗은 누명
입력 2013-04-30 17:57
1981년 리비아 건설 현장에서 기능공으로 일하던 김모(60)씨는 2년 뒤 귀국하자마자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 수사관들에게 강제로 연행됐다. 수사관들은 김씨를 간첩으로 몰았다. 건설 현장에서 우연히 만난 북한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는 게 이유였다.
김씨가 리비아에서 자신을 ‘금강상사의 벵가지 지구 자재 담당’이라고 소개한 북한 사람 박모씨를 만난 것은 사실이었다. 김씨는 박씨가 한국으로 내려오고 싶어 한다고 판단해 당시 한국의 발전상을 자랑했다. 김씨는 박씨에게 “서울 잠실에 아파트가 수백 동 건설됐고, 을지로 입구에는 40층짜리 롯데호텔 건물이 있다. 또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경기장도 건설 중에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기부에 구금돼 고문을 받으면서 대화 내용은 각색됐다. 김씨는 고문 29일 만에 ‘대남공작원의 지령을 받고 서울∼의정부 간 교통 및 군사시설, 서울시 건설현황 등 국가기밀을 누설한 간첩’이 됐다. 안기부는 ‘빈곤한 가정에서 자란 김씨가 한국에 반감을 가지고 간첩활동을 했다’고 조작했다. 1983년 11월 재판에 넘겨진 김씨는 법원에서 징역 15년에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았고, 1991년 가석방되기까지 9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김씨는 30년이 흘러서야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부장판사 유상재)는 지난 26일 김씨의 간첩 혐의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30일 밝혔다. 재판부는 “안기부에서 불법 구금과 가혹행위 등으로 인해 허위 자백을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