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퍼 전 캐나다 州의원 “식민지 경험있는 한국, 원주민 선교 선도해야”

입력 2013-04-30 17:27


“우리들처럼 외세에 지배당한 역사를 갖고 있으나, 짧은 시간 눈부신 영적 부흥을 이룬 한국 교회가 원주민 선교에 나서야 합니다.”

원주민 출신 최초의 캐나다 주(州)의원을 지낸 일라이자 하퍼(Elijah Harper·64)씨는 지난달 24일 전주 서완산동 바울교회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한국 교회가 북미 원주민 선교에 더욱 관심을 가져 달라”고 요청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하퍼씨는 지난 4월 24∼26일 바울교회에서 열린 제1회 한국·북미 원주민 선교대회에 초청받아 40여명의 원주민들과 함께 참여했다. 이번 선교대회는 하나님을 자주 접할 기회가 없는 북미 원주민들을 위한 한국 교회의 기도와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마련됐다.

캐나다 매니토바 주의원이던 그는 원주민 권리 찾기에 적극 나서면서 유명세를 탔다.

특히 하퍼씨는 캐나다 주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 등을 담은 미치호협정(Meech Lake Accord)에 반대했다. 이 헌법 개정안이 캐나다 원주민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며 강력하게 비판한 것이다. 결국 이 개정안은 매니토바주 및 뉴펀들랜드 래브라도주 의회의 반대로 1990년 폐기됐다.

하퍼씨는 현재 원주민 지원과 관련해 민간단체 등을 자문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가 한국 교회의 도움을 요청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한국도 일본에 점령된 뒤 문화 말살을 당한 것처럼 우리 원주민들도 백인들에게 처참하게 짓밟힌 역사가 있습니다. 이런 반감 때문에 백인들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와 비슷한 모습과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 교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북미 원주민들의 기독교에 대한 반감은 뿌리가 깊다. 백인들이 원주민 문화를 압살했을 뿐 아니라 어린 원주민들을 학대했으며 그들의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역할에 충실하기보다는 식민화 전략지로 활용됐다는 것이다. 하퍼씨는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캐나다 원주민들의 복음화율은 5% 정도도 안 될 것”이라며 “대부분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백인 종교라는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또 보호구역을 떠난 원주민들이 도시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면서 이런 반감은 더욱 커졌다. 그는 “원주민들은 돈을 벌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지 못해 도시에 정착하지 못하고 극빈층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원주민 선교는 문화적 접근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샤머니즘이나 애니미즘이 뿌리내린 원주민들에게 불쑥 성경말씀을 전하는 방식은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우리의 사물놀이 부채춤 공연 등과 같은 문화행사에 원주민들이 참여하도록 해 지속적인 교류를 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연 다음 서서히 복음을 전하는 ‘가랑비 전략’을 써야 한다고 하퍼씨는 조언했다.

그가 깊은 믿음을 갖게 된 것은 목회자인 아버지 덕분이다. 그의 이름이 성경에 나오는 엘리야(Elijah) 선지자와 같은 것도 이 때문이다. 또 한국 교회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 아버지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캐나다 중부 매니토바주의 북동쪽에 있는 원주민 보호구역인 레드 서커 레이크(Red Sucker Lake) 마을에서 50년간 목회를 하다 3년 전 세상을 떠났다. 교회를 개척했을 때 한국인 선교사가 재정적으로 큰 도움을 줬다고 했다.

하퍼씨는 1949년 3월 레드 서커 레이크 마을에서 태어났고 12세 때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됐다. 캐나다 매니토바대학교를 나와 81년 매니토바 주의원에 선출됐다. 78년 레드 서커 레이크 부족의 추장이 된 그는 90년 ‘명예 종신(終身) 추장’으로 추대됐다.

전주=글·사진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