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원세훈 전 원장 소환, 국정원 새로워질 기회

입력 2013-04-29 19:33

정치 개입은 꿈도 꾸지 말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길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어제 검찰에 전격 소환돼 대선 및 정치 개입 의혹과 관련된 조사를 받았다. 최고 정보기관의 수장이 임기가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 검찰청사에 불려나가 조사를 받는 것은 원 전 원장이 마지막이었으면 한다. 국정원이 본연의 임무는 제쳐두고 엉뚱하게도 정치판을 기웃거리다 망신당하는 일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검찰은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속전속결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주로 하위 직원들을 조사하면서 어정쩡하게 결론내린 경찰 수사가 여론의 뭇매를 맞는 것을 본 검찰의 판단일 것이다. 검찰은 국정원의 간부를 잇달아 소환한 것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사실관계를 명명백백하게 가려야 할 것이다. 이번 수사를 계기로 검찰은 약한 자에게 강하고, 강한 자에게 약하다는 그간의 오해를 종식시켜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최고 정보기관이 조직적으로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 것은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위해 북한의 대남공작을 분쇄하는 것은 물론 테러와 국제범죄를 막는데 역량을 다해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인데 국내 정치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는 것은 그 자체로 존재감을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북의 핵 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시점 등을 전혀 예견하지도 못하면서 과연 최고 정보기관이라 자부할 수 있는지 돌이켜봤으면 한다.

국정원은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이라는 원훈(院訓)과 달리 역대 수장들이 퇴임 이후에는 검찰 수사를 받는 불명예를 이어가고 있다.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할 재임 시절 대북 협상을 버젓이 월간지에 기고한 것은 물론 불법감청을 일삼다 구속되기도 했다. 국가안전기획부 시절에는 북풍 공작에 앞장서는 몰염치도 보였다. 역대 원장들의 이런 행태가 결국 이번 대선개입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는 국정원의 주장을 믿을 수 없게 만든 것 아닌가.

지금까지 수사 결과 국정원 직원의 ‘정치 댓글’ 작업에 고위층이 관여했지만 인터넷 종북 활동에 대한 대응이었을 뿐 선거 개입 의도는 없었다는 주장을 폈다고 한다. 사실이 그렇다면 일부 직원들의 빗나간 처신일 뿐 국정원 차원의 조직적 개입은 아닐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이미 공개된 이른바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이라는 국정원 내부 자료는 원 전 원장의 지시가능성을 높게 한다. 검찰이 원 전 원장을 철저하게 수사해야 하는 당위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국정원과 검찰은 다 같이 아픔을 겪고 있다. 전 원장 소환이라는 치욕을 당한 국정원과 수사의 핵인 대검 중수부 폐지라는 참극을 겪은 검찰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 방법은 검찰은 모든 외압을 물리치고 당당하게 사건을 수사하는 것이고, 국정원은 정치권 근처에 얼씬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두 기관 모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때 국민적 지지와 성원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