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FC의 이름으로 공격축구 부활시킨다… 곽경근과 아이들 ‘유쾌한 반란’

입력 2013-04-29 19:23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춘의동에 있는 부천종합운동장. 부천 축구팬들에겐 추억과 눈물이 어린 경기장이다. 1990년대 중반 부천종합운동장은 기술 축구의 산실이었다.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은 그곳에서 ‘뻥 축구’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2006년 2월 2일 부천SK(현 제주 유나이티드)가 돌연 제주도로 연고지를 옮겼다. 부천 축구문화는 쇠락하는 듯했다. 그러나 부천에는 열혈 서포터스 ‘헤르메스(Hermes·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12번째 신으로 12번째 선수란 의미)’가 있었다. ‘헤르메스’는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2007년 12월 1일 부천FC 1995를 만들었다. 부천FC 1995는 이번 시즌 K리그 챌린지(2부 리그)에 입성했고, 지난달 23일 부천종합운동장에선 7년 4개월(2005년 11월 9일 대전과의 홈경기 이후) 만에 프로 경기가 열렸다.

29일 부천종합운동장에서 만난 곽경근(41) 부천FC 1995 감독은 감회가 새로운 듯했다. “이 경기장의 주인으로서 옛 영광을 재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어깨가 무겁습니다.” 부천시 상동에서 태어난 곽 감독은 옛 부천FC의 레전드다. 그는 ‘부천 축구’를 부활시키기 위해 2011년 12월 연봉도 받지 않고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이번 시즌 부천의 돌풍을 이끌고 있다. 부천은 30일 현재 4승1무1패(승점 13)로 K리그 클래식 못지않은 화려한 선수층을 가진 경찰축구단(4승1무·승점 13)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팀이 잘나가고 있어 걱정이 없겠다”고 곽 감독에게 묻자 “아이고∼ 아닙니다” 하고 받아친다. “너무 잘나가고 있어 걱정입니다. 주위의 기대가 너무 커 팀이 부진에 빠지면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입니다.” 부천에서 팬들이 알 만한 선수는 포항, 부산, 울산에서 뛰었던 김상록(34)이 유일하다. 나머지 선수들은 모두 곽 감독이 직접 뽑았다. 이들은 무명의 ‘잡초’ 같았다. 곽 감독은 이들을 하나하나 팀에 옮겨 심었다. 그리고 부천 특유의 축구를 완성시켰다.

부천FC 1995는 옛 부천FC와는 완전히 다른 팀이다. 그러나 홈구장인 부천종합운동장에서 그 전통을 잇고 있다. “축구는 쇼”라고 외치는 곽 감독이 있기 때문이다. 니폼니시 감독과 두 시즌을 함께 보낸 곽 감독도 기동력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패스 축구를 추구한다. “홈구장을 찾는 팬들이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축구를 해야 합니다. 선수비-후역습 작전으로 축구를 하면 재미없어요. 성적요? 그건 신경 안 씁니다.” 우직한 곽 감독. 그의 목소리엔 힘이 실려 있었다.

곽 감독은 “팀이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건 팬들 덕분”이라고 했다. 홈경기 전 곽 감독은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많은 관중 앞에서, 이런 응원을 받으며 경기해 본 적 있느냐? 긴장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재미있는 축구로 보답하라.”

“오∼ 나의 부∼천, 영원히 함께해!” ‘헤르메스’는 홈경기 때면 ‘90분 서포팅’을 펼치고 있다. 부천 선수들과 함께 뛴다는 생각으로 경기가 끝날 때까지 펄쩍펄쩍 뛰며 구호를 외치고 응원가를 부르는 것. 지난달 23일 열린 고양 Hi FC와의 첫 홈경기(부천 3대 1 승리)에선 6000여명의 팬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2013년 봄 부천종합운동장의 꿈은 오랜 시련 끝에 활짝 꽃봉오리를 터뜨리고 있다.

부천=글·사진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