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믿고 찾아갔더니… 무늬만 ‘전문의’
입력 2013-04-29 18:12 수정 2013-04-29 15:08
전문의가 진료하는 것처럼 간판을 달아놓은 일반의 운영 병·의원들이 무더기 적발됐다. 환자들이 착각하도록 눈속임용 병원 명칭을 쓰는 의료계 관행이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29일 오후 찾은 서울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4번 출구. 이곳에서부터 신사동 을지병원 사거리까지 오르막길 700m 구간에 수십개의 성형외과와 피부과가 밀집해 있었다. 대부분 간판에는 ‘성형외과’ ‘피부과’ 대신 ‘성형외과의원’ ‘피부과의원’이라고 써놓았다. 의료법에 따르면 이 같은 표기는 불법이다. 전문의 자격증이 없는 일반의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간판 등에 진료 과목을 표시하려면 병원 명칭 옆에 절반 크기의 글씨로 ‘진료과목: 성형외과’ 등으로 병기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병원은 진료를 받으려는 환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이날 국민권익위원회는 의료법에 명시된 간판 표시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전국 병·의원 26곳이 의료법 위반 혐의로 관할 보건소로부터 전원 간판 교체, 업무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받았다고 밝혔다. 권익위 관계자는 “환자들이 전문의와 비전문의를 구별할 수 있는 수단이 간판밖에 없다”며 “간판만 보고 전문의인줄 알고 진료를 받았다가 부작용이 생긴 사례도 속출하고 있어 관련 기관의 대대적인 단속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일반의와 전문의는 엄연히 구분된다. 의대 졸업 후 의사시험에 합격한 일반의가 인턴과 레지던트 등 5년여의 수련 과정을 거쳐 진료과를 정한 뒤 전문의 시험을 통과하면 전문의 자격증을 얻게 된다. 그러나 환자들이 의료법을 잘 모른다는 점을 악용해 많은 병원이 전문의가 없는데도 ‘성형외과의원’이나 ‘성형클리닉’ 등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성형외과가 인기를 끌다보니 정체불명의 수료증인 ‘국제성형외과 전문의’ 명칭을 내걸고 전문의 행세를 하는 ‘비양심’ 일반의도 많다. 지난해 6월 서울중앙지법은 서울 강남에서 자신을 국제성형외과 전문의로 소개하며 성형수술을 해오다 의료사고를 내 고소당한 일반의 A씨에 대해 피고패소 판결했다.
청담동의 한 일반병원에서 성형수술을 받은 이모(25)씨는 “원장 약력에 국제성형외과 전문의라고 쓰여 있는데다 병원 이름도 성형외과여서 전문의인줄 알았다”면서 “속은 것 같아 분통이 터진다”고 토로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비양심적인 의료기관이 늘어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협회 차원에서는 마땅히 제재할 방법이 없다”면서 “단속은 관할 지자체의 몫”이라고 말했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