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민해] 五月愛

입력 2013-04-29 17:45


“멀어져 가는 아이들에게 조금 더 다가가 들여다보면 인재는 만들어진다”

5월은 신록의 달이며 만춘과 초하의 달이고 청소년의 달이자 가정의 달이다. 4월은 매화와 벚꽃의 작은 꽃잎이 흩날리는 달이었다면 5월은 나무마다 새잎이 파릇파릇 돋아 온 나라가 연둣빛 세상이고, 신록이 곧 연록에서 담록으로 바뀌고, 모란과 작약 장미가 피어나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는 달이다. 그래서 5월은 아름다운 자연을 닮은 청소년의 달이다. 5일은 어린이날, 8일은 어버이날, 15일은 스승의 날, 5월 셋째 주 월요일은 성년의 날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고자(孤子),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애자(哀子)라 하며 두 분 다 돌아가셨을 경우 고애자(孤哀子)라 한다. 나이가 40이거나 60이거나 80이거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극한 슬픔은 다르지 않다. 오죽하면 가슴을 찢는 아픔이라 할까.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자식은 자신을 애자라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이해를 할 수 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자식은 왜 자신을 고자라 할까? 인생을 살다 보면 중요한 대소사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고독, 의논할 대상이 없고 속 시원히 해결책을 제시해 줄 인생 상담의 대상이 사라져 온전히 혼자 결정해야 하는 순간의 심정을 외로울 고자를 써서 표현한 것이리라. 이제 인생의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은 거의 없지만 필자도 5월이 되면 문득문득 외롭다.

요즘은 스승도 없고 제자도 없다고 한다. 오직 교사와 학생만 있다 한다. 그럼 스승과 제자는 어떤 사람을 말하는가. 스승은 단순 지식의 전달자가 아닌 우주의 진리와 삶의 철학, 자연에 대한 태도를 말씀과 서책 행동을 통해 가르침을 받는 대상이요, 일거수일투족을 그대로 닮고자 하는 모범이다. 제자는 내제자(內弟子)와 외제자(外弟子)가 있다. 스승의 가르침을 직접 받은 제자. 스승의 가정이나 서당 향교 등에서 스승과 함께 생활하며 직접 가르침을 받고 말씀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 글씨 하나하나, 삶에 대한 모든 것을 그대로 따라하며 닮고자 노력하는 제자를 내제자라 한다면 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못했지만 책으로 말씀으로 배우고 본받고자 했다면 외제자라 일컫는다.

스승이 왜 없다는 것인가. 어느 시대 어느 장소든 본받을 만한 훌륭한 어른은 다 있다. 단지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그런 분의 가르침을 따르고 모범을 삼고자 하는 사람이 적을 뿐이다. 제자가 왜 없다고 하는가. 어느 시대 어느 곳이든 훌륭한 인재는 다 있다. 일반계 고등학교라 해서 훌륭한 인재를 특목고에, 자사고에 다 빼앗겼다고 인재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오히려 진정한 인재는 숨어 있다. 물론 일반계고의 문제점도 있고 어려움도 있다. 그러나 책상에 엎드려 하루 종일 잠만 자는 학생 속에 빌 게이츠가, 제2의 스티브 잡스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런 아이들에게 삶을 사는 방법. 인간관계의 중요성 등을 칭찬과 꾸중으로 세밀하게 가르쳐주면 겉으로는 시큰둥하지만 내심 그 관심이 반가울 것이다. 스승의 날 즈음에 많은 교사들은 똑똑한 제자보다 말썽꾸러기 제자가 더 오래 찾아온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어느 녀석은 매번 가출할 때마다 찾아서 데려다 놓곤 했는데 이제 정신을 차려 제 삶의 몫은 한다는 둥, 머리는 좋은데 요령만 피우다 된통 혼 한번 나고 정신을 차리더니 스승의 날만 되면 부부가 집으로 찾아온다는 둥. 선생님들의 말씀 속에는 스토리도 많다. 찾아보면 인재는 무수히 발굴할 수 있다. 조금 더 들여다보고, 자꾸 멀어져 가는 아이에게 귀찮게 다가가고 하다 보면 인재는 만들어진다. 교사들도 잘 알고 있다. 스승의 날에 부끄럽지 않은 교사가 되려면 희생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대체로 아버지보다 스승이 젊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가지 않은 길의 끝이 닿은 곳을 바라보다가 도저히 결정을 못 하겠거들랑 자신의 삶 속에서 그래도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받았고, 가끔씩 뵙고 싶은 선생님이 한 분이라도 계시거든 5월에 한번 찾아뵙는 것은 어떨까. 아름다운 5월이니까.

민해 혜원여고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