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원의 기적-삼일교회 신용길 목사] 따뜻한 대륙의 심장 말라위, 소망이 깃들 그 땅을 품으며!

입력 2013-04-29 18:08 수정 2013-04-29 21:36


말라위는 아프리카 남동부에 위치한 국가다. 화려하지 않지만 아름다운 하늘과 그 땅에 친절한 미소가 있다. 그래서인지 아프리카의 따뜻한 심장이라 불린다. 그러나 말라위는 발전이 늦은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최빈국이다. 어찌할 수 없이 만연해 있는 빈곤과 아프리카 대륙의 고질병, 에이즈의 영향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활주로만 겨우 갖춰진 말라위 공항에 내렸다. 차로 30여분만 들어가면 목적지에 도달한단다. 가는 길에 도시라고 할 것도 없이 건물 몇 채 있는 도심을 지나고 나니 곧장 허허벌판의 시골 풍경이 이어졌다. 마을에 도착하자 순수하고 맑은 눈망울의 아이들이 우리를 맞아줬다. 말라위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가 예뻤던 만큼 그들의 고단하고 비참한 모습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광활한 들판에서 개구쟁이들이 장난을 치며 신나게 뛰어놀았다. 한없이 천진하고 즐거워 보이는 그 아이들을 보면서도 마음 한켠에 씁쓸함이 밀려왔다. 아이들이 차고 노는 공은 비닐을 둘둘 말아서 만든, 말하자면 쓰레기로 만든 공이었다. 그마저도 없어서 못 노는 아이들은 마을 공터에 모여 앉아서 멍하니 있거나 흙장난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아침 일찍부터 교회 앞 우물에서 물을 길었다. 이 우물은 선교사들이 만들어준 것으로 동네에서 유일했다. 교회와 가까운 마을 공터의 그늘이나 교회 마당의 우물가에는 항상 아이들이 모여 있는데, 물이라도 마음껏 마실 수 있는 곳이 이곳밖에 없어서다. 종종 입에 사탕수수막대를 물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유일한 간식이었다.

말라위는 연중 대부분이 건기다. 이 기간에는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다. 두 달여 남짓 우기가 돌아와 비가 찔끔 내리고 나면 금세 흙먼지를 일으키는 푸석한 땅이 모습을 드러낸다. 대부분 먹을 것을 직접 재배하지만 땅이 척박하고 기후가 농사짓기에 좋지 않아 작황이 아주 나쁘다. 옥수수를 재배해도 대궁에 하나 밖에 열매가 달리지 않는다. 그마저도 잘 여물지 못해서 낱알이 적다.

말라위에도 농협 같은 곳이 있었다. 사람들이 이곳에서 며칠씩 줄을 서 먹을 것을 구한다고 했다. 작황이 좋지 않으니 곡식 출하량이 턱없이 부족해 먹을 것을 사는 데도 사나흘씩 걸린다. 세 끼 배불리 먹는 일은 어림도 없었다. 유일한 음식이라고는 옥수수가루를 빻아서 반죽한 것을 익혀 먹는 것인데 그마저도 넉넉지 못해 끼니를 겨우 때우는 실정이었다. 시골 주민들이 식료품이라도 구입할라치면 차로 30분가량 걸리는 도시로 나간다고 했다. 도시라고 해봐야 1980년대 우리나라 면소재지 정도의 규모이지만 그나마 건물이라도 서있긴 하다.

기초생활이 이정도니 병원 같은 시설은 꿈도 못 꾼다. 말라위 인구 약 1500만 명 중 의사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겨우 200명 남짓이었다. 인력이나 시설뿐 아니라 의료와 관련한 모든 것이 부족했다. 어떤 여성 선교사가 간호사로 근무 중인 도립병원을 방문했다. 병원 입구에 들어서기도 전에 병원 마당에 무리를 지어 앉아 있는 산모들이 방문객을 맞았다. 건물로 들어서니 대기실도 환자, 특히 산모들로 북새통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어 보니, 출산을 도울 병원이 없어 각 지역의 산모들이 모두 이 병원으로 몰린다고 했다. 입원실이나 침대 시설이 부족해 출산 직전이라고 판단된 산모들만 분만실로 들이기 때문이란다. 건물 안으로도 들어오지 못한 산모들은 뙤약볕에 앉아 길게는 몇 시간씩 산통을 견디고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출산 후에도 분만 대기자가 많기 때문에 20분 안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한다고 했다.

칸막이로 막은 분만실에는 깨끗해야 할 시트도 깔려 있지 않았고, 잔뜩 얼룩진 나무판자로 된 침대만 보였다. 병실 한구석에는 방금 전 미숙아를 낳은 어린 여자아이가 힘없이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강보에 쌓인 제 아기를 초점 없는 눈으로 바라보면서 차마 자리를 뜨지 못했다. 나이는 고작 열두살. 토속 신앙 때문에 잘못된 성 문화가 뿌리깊이 박혀있었다. 이 때문에 여성, 특히 어린 여자아이들이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숙아도 많이 태어나고 있다. 간호사 선교사는 “인큐베이터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면 충분히 살릴 수 있을 생명이 태어나자마자 죽는다”고 안타까워했다. 말라위의 의료 시설은 열악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 소독약조차 없어서 작은 염증으로도 목숨을 잃는다고 했다.

방문기간 동안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보면서 무엇보다도 안타까웠던 것은 무엇을 해보려고 해도 할 것이 없는 말라위 사람들의 삶이었다. 배우려고 해도 학교가 없고 배가 고파도 먹을 것이 없었다. 짧은 방문 중에도 눈 뜬 송장처럼 매일같이 시간을 버리는 말라위 사람들의 모습이, 이곳이 아프리카 최빈국 국가 중 하나임을 실감케 했다.

그나마 기아대책의 어린이개발사업(CDP)으로 각 마을의 족장에게 추천받은 몇 명의 어린이가 혜택을 받아 학교를 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이들에게 우리 돈 3만원의 교육비가 지원된다. 이 돈이면 한 학기 수업은 물론, 생활비, 교재비, 교복까지 맞출 수 있다고 한다. 그나마 이런 교육 혜택을 받는 것은 고작 3000명 정도다. 3000명이면 1500만 인구의 0.02%, 우리나라로 치면 초등학교 세 개 정도밖에 안 되는 규모다.

말라위는 우리나라만큼 힘든 역사를 견뎌왔다. 과거에는 노예제도와 싸웠고, 수십년간, 몇 나라에 걸친 식민 지배를 벗어나 독립국가가 된 것이 불과 반세기 전의 일이다. 그러나 실제로 말라위는 아직도 온전히 독립했다고 할 수 없다. 제국주의의 잔재와 싸워 독립을 쟁취한 후에도 정부 부재의 심각한 혼란기를 틈타 독재 정권이 장기집권을 하면서 나라 살림이 엉망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얼마 전에는 대통령이 급사해 부통령이 대리를 맡고 있는데, 정부가 무능하여 아무런 구실을 하지 못했다.

앞서도 말했지만 땅이 척박해 농업 등의 기초산업조차 발달하지 못한 데다 오랜 정치혼란기를 거치면서 국가가 유지될 만한 어떠한 산업도 발달하지 못했다. 그동안은 유럽연합의 지원에 의존해왔다. 그마저도 최근 유럽연합에서 지원을 계속하는 조건으로 내세운 동성애 합법화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아 지원이 끊긴 상태다. 통계적으로는 기독교인이 80%를 차지하는 보수적인 나라지만 여전히 토속신앙이 곳곳에 뿌리 깊게 남아 있고, 당장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할 정도로 극심한 빈곤을 틈타서 물자 지원을 빌미로 삼아 각종 이단들도 많이 들어와 있었다.

얼마 전 모 방송사의 오디션 프로그램 ‘K-Pop스타’에서 우승한 악동뮤지션이라는 선교사 자녀들을 다룬 기사를 보았다. 그들은 타고난 끼와 재능을 충분히 살려 우승을 거머쥐었고, 그들을 인터뷰했던 기자는 “만약 그들이 한국에서 자랐더라면 이러한 재능이 발견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에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만감을 교차하게 하는 대답이었다. 물론 분에 넘치게 좋은 환경과 좋은 음식, 좋은 시설의 학교가 있다 하여서 아이들이 참된 인격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 배고픔을 달래줄 정도의 음식 그리고 배울 수 있는 교육시설조차 전혀 없는 말라위의 현실이 자꾸 떠올라 착잡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요즘 우리는 감동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TV프로, 영화의 장르를 보면 감동을 주는 주제를 가진 영화들이 관객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머리로만 느끼고 마음에서만 그치는 감동과 사랑에 멈추고 있지는 않은가. 물가에서 발목을 적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말라위를 위한 손길 끝에, 메마른 가슴과 계산적이고 이해타산에 밝은 머리까지 온전히 푹 적시는 사랑의 감동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현실에서 고개를 조금 들어 굶주림에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면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감동의 삶이 온다. 이 시대를 향해 또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예수님께서 주신 질문이 있다.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지만 생명에게 마음을 줄 수 있는 넉넉함 마음이라면 분명 우리 역시 사랑받는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이 ‘좋고 나쁘다’ ‘불쌍하다’를 논하기 전에 하나님께 창조된 인간인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며 이 세상에서 무엇이 회복되어야 하는가. 주님은 말라위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심으로 진지하게 스스로를 바라보게 하신다. 우리의 이웃 말라위 사람들에게는, 현재의 삶을 좌절시키고 무릎 꿇리려는 가난과 절망, 그리고 이어지는 영적 타락과 모든 사회와 삶의 상실로부터 구원해줄 사랑이 절실히 필요하다.

나는 복음을 온전히 믿는다. 주님의 구원하심에 반응하는 사람들이라면 분명히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존재하며 그로 인해 존귀한 자가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어떤 가난과 비천도 하나님의 사람들을 초라하게 하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 어떤 부와 명예, 그리고 세상의 어떤 것도 한 영혼, 한 생명의 가치를 이처럼 훌륭하게 만들지 못한다. 이 진리를 가난한 사람에게도 부자들에게도 진심으로 알리고 싶다.

감사하게도 최근 들어 말라위를 보다 아름답고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려는 한국교회와 NGO들의 관심이 조금씩 이어지는 중이다. 하지만 1인당 연간 농업수입이 150달러 남짓한 돈으로 살아가는 말라위 사람들의 가난과 굶주림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한국도 불과 50~60년 전만 해도 전쟁과 가난으로 비참했고 여러 나라의 지원을 받는 처지였다. 그로부터 50여 년 만에 한국은 수혜국에서 이제 세계 4번째 지원국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지원 규모나 국민 인식 수준을 비롯해 우리의 경제력에 비해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 부모세대에 고생을 많이 한 민족이라 여태 자수성가를 자랑스러워하며 자신의 고생과 노력밖에 모르고 사는 사람이 많지만, 그 당시 국제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국은 없었을 것이다.

한국교회와 성도들 그리고 이제 가난에서 벗어나 많은 혜택을 누렸던 사람들은 보다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행동의 삶이 있어야 할 때다.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남아 있었던 노예제도, 제국주의의 잔재, 폭압의 독재정권과 줄기차게 싸워서 독립을 쟁취한 나라, 아프리카 말라위를 도와야 한다. 구호뿐인 사랑은 없다. 힘든 역사를 딛고 일어서는 말라위 사람들에게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도움이 전해지는 돕는 사랑이어야 하고, 희생과 헌신이 따르는 사랑이어야 한다. 우리들의 구호는 분명 예수 그리스도의 손과 발이 되어 섬기는 사랑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 열매로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잃어버린 첫사랑을 회복할 것이며, 구원의 감격뿐만 아니라 까맣게 타버린 마른 뼈 같은, 소리 나는 마른 장작과도 같은 인간성도 함께 회복될 것이다.

사랑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삶 가운데서 체득하게 한다. 사랑은 나눌수록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풍성히 채워지는 것이다. 이상하게 조건 없는 나눔은 내 삶을 풍요롭게 한다. 설명할 수 없는 논리다. 사랑함으로 얻어지는 감사함과 기쁨은 또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사랑은 말로 외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벅찬 감격은 억지시늉을 하지 못한다. 더 나아가서 실천과 행동 없는 신앙은 능력이 없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삶으로 증명해야 한다. 한 목사님은 구제와 헌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했다.

“복음을 위한다면 네 지갑을 찢어라!”

이 짧은 글을 통해 빈곤을 종식시키려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구체적인 실천이 작은 파문처럼 일어나길 기도한다. 그 작은 물결이 파도가 되고 태풍이 되어 세상의 가난을 덮으면 좋겠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영위할 정도의 수준을 가진 자라면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받고 말씀에 충만하며 행동하는 신앙으로 말라위를 비롯한 세상에 어려운 이웃을 돕는 자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