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의 시편] 전혀 새로운 제2의 야브네 거리 운동

입력 2013-04-29 17:32


주후 70년경 이스라엘이 로마에 멸망하기 직전에 유대인의 지도자 벤 자카이는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어머니들을 성전 앞으로 모아 놓고 눈물로 호소했다. “예루살렘의 어머니들이여, 비록 예루살렘성이 망한다 할지라도 여러분의 가슴과 입에서 하나님의 율법이 자녀들의 가슴에 전해지는 한, 우리 민족은 영원히 망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눈물로 외치고 나서 그는 관 속에 누워 죽은 시신처럼 예루살렘 성을 빠져 나가서 로마군 총사령관인 베스파시아누스를 만난다. 그리고 그를 황제라고 부르며 무릎을 꿇고 눈물로 사정했다. “황제 폐하, 예루살렘 성을 무너뜨리고 성전을 파괴해도 좋지만 오직 야브네 거리만큼은 파괴하지 말아주시기를 간청 드립니다.”

그는 왜 그랬을까. 야브네 거리는 이스라엘의 회당이 있고 랍비들이 사는 동네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베스파시아누스는 자기를 황제라고 불러주는 말이 기분 나쁘지 않게 여겨서 벤 자카이의 말처럼 야브네 거리만큼은 손을 대지 않았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이 파괴되고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나라는 망했지만 여전히 야브네 거리는 존재하였고 랍비들은 그곳에서 어린아이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고 민족의 정체성을 심어 주었다.

그처럼 이스라엘 민족은 피눈물을 흘리며 자녀들에게 신앙과 민족의 정체성 교육을 시켰다. 그래서 1948년, 드디어 이스라엘 고토에 돌아와 다시 나라를 세웠을 때 세계 각국에 흩어졌던 모든 유대인들이 다 모였지만 놀랍게도 음식, 문화, 언어, 신앙이 다 똑같았다. 하나님의 구속섭리를 모르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치 못한 그들도 말씀 교육의 중요성을 그토록 잘 알았다면 하물며 우리 기독교인들이야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타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은 잘 감당했지만 자녀와 후손들에게 복음을 잘 전수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복음의 전성기를 누렸던 로마, 유럽, 미국도 200년 내외로 복음의 꽃을 피우다가 쇠퇴기를 맞는 비극을 겪었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는 겨우 100년을 넘어서 쇠퇴기를 맞고 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모든 한국교회의 어른 숫자보다 어린이 숫자가 훨씬 더 많았다. 그러나 80년대 중후반부터 주일학교 숫자가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노년과 장년층에 비해 청소년과 주일학교 학생이 급감하는 가분수 현상을 이루고 있다. 지금이라도 주일학교를 다시 살리지 않으면 미래의 소망이 없다.

이제, 전혀 새로운 제2의 야브네 거리 운동을 펼쳐야 할 때다. 교회마다 목회 프로그램과 시스템을 최우선적으로 주일학교 교육에 집중해야 한다. 벤 자카이의 눈물의 호소처럼, 우리가 자녀들의 입술과 가슴에 복음을 전수하고 민족의 정체성 교육을 하지 않는다면 한국교회는 미래의 소망이 없다. 예수님도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 울고 있는 여인들을 향하여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고 하지 않으셨는가(눅23:28). 어린이주일이 다가온다. 다시 폐허 위에 꽃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자녀들을 위한 기도의 눈물을 뿌려야 한다. 다음세대의 믿음 전수를 위해 가슴을 치며 울어야 할 때이다.

<용인 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