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계약직은 딴나라 얘기… 우린 ‘미스김’ 아니라 ‘정주리’
입력 2013-04-28 18:14
“비정규직한테 꼭 내야 하는 휴가가 어딨어!”(오지호·장규직 역)
“제 업무가 아닙니다.”(김혜수·미스김 역)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한 직장에서 근무하며 벌어지는 사건을 코믹하게 그린 KBS 드라마 ‘직장의 신’이 20∼30대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극중 비정규직인 김혜수는 오전 9시∼오후 6시의 업무시간을 철저히 지키고 업무 외 일이 있을 땐 수당을 척척 챙긴다. 반면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정유미(정주리 역)는 정규직 사원들의 커피·담배·복사 등 잔심부름에 시달린다. 밤새 아이디어를 생각해도 정규직 사원들이 가로챈다. 하지만 극중 정주리는 꾹 참는다. 언젠가는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현실은 어떨까. 비정규직 20∼30대 직장인들에게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권모(26)씨는 지난해 12월 초 S보험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권씨에게 S보험은 다섯 번째 직장이다. 권씨는 “주로 서류정리나 단순 관리업무 등을 맡았다”며 “간혹 커피타기, 담배 심부름이나 상사의 개인 사무도 돕는다”고 털어놨다. 권씨의 월급은 100만원, 연봉 1200만원 정도다. 이 회사 정규직 1년차 연봉 5000만원과 큰 차이가 난다.
한 대학교 비정규 교직원인 정모(28·여)씨는 “정규직과는 식사를 따로 하고 개인적인 관계를 맺지도 않는다”며 “차별은 이제 너무나 당연한 얘기”라고 했다. 또 “어떻게든 취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 시키는 모든 일을 했지만 다른 회사 면접에 가도 경력으로 봐주지 않았다”며 “드라마에서 비정규직인 미스김이 ‘제 업무가 아닙니다’라며 일을 거부하는 건 현실에선 상상도 할 수 없다”고 씁쓸해했다.
정규직 전환도 하늘의 별따기다. 한 광고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홍모(30)씨는 “수당을 안 준다고 신고하면 내부고발자 취급을 당하기 일쑤”라며 “소문이라도 퍼지면 비슷한 업종에 입사조차 힘들어진다”고 했다. 그는 “비정규직은 재계약을 안 하면 바로 해고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는 부담 없이 쓰고 버리는 것 같다”며 “이러다 보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간극은 점점 더 벌어진다”고 하소연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 3월 발표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 보고서에 따르면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지난해 8월 기준 국내 비정규직 근로자는 591만1000명으로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33.3%를 차지한다. 일하는 인구의 3분의 1가량이 비정규직이지만 이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여전히 한정돼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각종 복지혜택과 관련, 정규직의 경우 퇴직금이 있는 비율이 80.2%, 상여금 81.8%, 시간외수당 56.2%, 유급휴일 71%인 반면 비정규직 중 39.6%가 퇴직금을, 36.4%가 상여금을 받는데 그쳤다. 시간외수당은 비정규직의 23.2%만 받고 있었다. 월평균 임금은 지난해 기준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56.6% 수준이었다. 이는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이 62.7%였던 2006년에 비해 크게 떨어진 수치다.
홍순광 민주노총 비정규국장은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현실은 직장의 신 ‘미스김’이 아니라 ‘정주리’에 가깝다”며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와 시선이 바뀌기 위해서는 동일임금·동일가치노동·직접고용원칙 등이 담긴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