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 무조건 쫓다보니… 창조금융, 알맹이가 없다
입력 2013-04-28 18:09 수정 2013-04-28 22:40
은행권에 ‘창조금융’ 바람이 거세지만 ‘속 빈 강정’ 신세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 창조금융을 강조하자 시중은행은 기술·지식재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상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하지만 정부 정책에 급하게 발을 맞추다 보니 기존 대출상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설익은 상품’이 나오고 있다. 실효성도 떨어져 대출신청 건수가 ‘0건’이다.
KDB산업은행은 지난달 19일 창조금융 상품이라며 ‘지적재산권(IP) 담보대출’을 내놨지만 아직 대출 건수가 한 건도 없다고 28일 밝혔다. KB국민은행도 비슷한 상품인 ‘KB Pre-Start 기술보증부 대출’을 지난 7일 내놨지만 실적이 없다.
산은의 IP 담보대출은 지적재산권만 있으면 최대 20억원까지 대출을 해준다. 산은은 손실부담을 줄이기 위해 ‘회수지원펀드’를 조성했다. 대출받은 기업이 부실화될 경우 이 기업이 담보로 내놓은 지적재산권을 회수지원펀드에 매각해 대출원금을 회수하겠다는 것이다. 회수지원펀드 운용사는 사들인 지적재산권으로 수익을 내는 구조다.
그러나 산은은 한 달이 지나도록 정작 필수적인 회수지원펀드 운용사를 선정하지 못하고 있다. 자산운용사들은 지적재산권으로 수익을 내는 일에 회의적이다. 펀드 운용사를 찾지 못하면 상품 판매가 이뤄지기 힘들다. 산은 관계자는 “현재 운용사 선정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다음달 중에는 시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사정도 비슷하다. 기술보증부 대출은 기술만 있으면 창업 이전에도 대출을 해주는 상품이지만 절차가 까다롭다. 지적재산권사업화·신성장동력 창업 기업이거나 녹색성장·지식문화·이공계출신·1인창업·뿌리산업 창업 기업이면서 벤처창업교실·기술창업아카데미 등 창업교실을 이수한 기업이라야 대출에 유리하다. 기술보증기금의 보증도 필요하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기술 검증에 시간이 걸리다보니 아직 대출은 없지만 현재 일부는 심사에 들어갔다”라며 “이 외에도 다양한 창조금융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두 은행의 창조금융 상품이 기보와 신용보증기금에서 이미 실시하고 있는 보증대출과 큰 차이가 없다. 기보는 이미 2006년부터 지식재산 기반 기술금융 보증절차인 ‘특허기술가치연계보증’을 운용 중이다. 신보도 2010년부터 ‘기업가치평가시스템’을 통해 미래성장동력을 평가하고, 올 초에는 연구·기술력에 보증을 서주는 ‘지식자산가치평가’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금융권에서는 무리하게 ‘코드’를 맞춘 결과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조차 창조금융이 무엇인지 제대로 정의를 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마음만 앞섰다는 것이다. 그동안 창조금융을 수차례 강조해온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난 26일에도 “창조금융이란 창업·혁신기업이 창조적인 지식과 기술을 담보로 손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금융지원 시스템”이라는 원론적인 설명만 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지식·기술재산 담보에 대한 부담을 떠안으면 모를까 지금은 예전 기보·신보에서 보증 받아 시행하던 대출을 돕는 수준에 불과하다”며 “금융당국부터 어떻게 지식·기술재산을 평가할 것인지, 담보 부담은 어떻게 할지 명확히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