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3부) 한국,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는다] ⑨ 입시지옥 없는 나라

입력 2013-04-28 17:49


독특한 ‘대기학기제’… 기다리면 원하는 대학 간다

독일은 입시 지옥이 없다. 성적이 낮아도 ‘기다리면’ 원하는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다. 돈이 없어도 하고 싶은 공부를 맘껏 할 수 있다.

독일 대학 입시에는 대기학기제라는 독특한 제도가 있다. 예를 들어 특정 대학 심리학과에 지원을 했으나 성적이 낮아 떨어진 A학생이 있다. A가 그 대학 심리학과에 꼭 가고 싶다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두고 기다리면 된다. 대학은 그 다음 신입생 선발 때 대기자 명단에서 일정 비율을 뽑는다. 오래 기다릴수록 A가 해당 대학에 들어갈 가능성이 커진다. A는 대입에 필요한 시험을 또 치를 필요가 없다. 다른 대학에 등록만 하지 않으면 된다.

독일 빌레펠트대 생물학과의 지난 학기 신입생 40명 가운데 8명은 이처럼 선발을 기다린 학생들이다. 독일 대학은 모두 이런 대기학기 제도를 운영한다.

의대·치의대·수의대·약대 등 인기 학과는 대기학기제가 더 엄격히 적용된다. 정원의 20%가 대기자 몫으로 할당돼 있다. 이런 인기 학과의 경우 각 대학이 학생 선발을 100% 하지 않는다. 인기 학과 학생 선발에 관여하는 공공기관이 있다. 이른바 ‘중앙 대학입학허가재단’이다. 이곳에서 각 의대·치의대 등의 정원 40%를 선발한다. 나머지 60%만 대학이 자체적으로 뽑는다.

중앙 대학입학허가재단은 할당된 인원(정원의 40%)의 절반은 성적 우수자로, 나머지 절반은 대기자 가운데서 뽑는다.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州)의 프라이부르크대학 의대의 지난 학기 신입생 341명 가운데 68명이 대기자였다.

독일 빌레펠트대 학생 선발 담당 부처장인 올리버 드리스는 “우리는 ‘그룬트게제츠’(기본법·독일 헌법)의 정신을 따를 뿐”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능력에 관계없이 모든 학생에게 똑같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게 그룬트게제츠의 정신이다.

독일 대입에서는 중복 지원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독일 전체에서 10개 대학까지 지원할 수 있고, 한 대학에 6개 전공까지 지원할 수 있다. 대입 지원 전형료는 한 푼도 내지 않는다. 가고자 하는 대학에 자리만 있으면 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편입이 가능하다. 정원이 제한되지 않은 전공도 많다. 대학 교육을 받고 싶은데 못 받는 일은 독일에서 있을 수 없다.

독일 대학에는 등록금이 없다. 학생회비 등으로 학기당 200∼300유로(약 29만∼43만원)쯤 내야 하지만 학생들은 낸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 학생증을 제시하면 주(州) 안에서 대중교통을 모두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 기차도 고속철인 이체(ICE)와 인터시티(IC)를 제외하고는 무제한 탈 수 있다.

■ 자문해주신 분들 ▲한스우베 오토 독일 빌레펠트대 석좌 교수 ▲토머스 카토이퍼 독일 대학총장협의회 사무총장 ▲사비네 베흐렌벡 독일 학술자문회의 박사, 잉카 스팽그라우 박사, 크리스티아네 클링매테이 홍보담당관 ▲비테 토머스 독일 학술진흥재단 박사 ▲정수정 한국교육개발원 독일통신원 ▲이창윤 주독일대사관 본 분관 교육과학관, 고유정 통·번역 담당 직원 ▲김귀옥 독일 본 에른스트 모리츠 아른트 김나지움 한국어 교사 ▲홍성대 주독 한국교육원장

빌레펠트=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