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3부)] 정부, 대학 기초과학 전폭 지원… 기술강국 밑거름
입력 2013-04-28 17:38
독일인에게 “독일에서 가장 좋은 대학이 어디입니까”라고 물으면 “참 어리석은 질문이네요”라고 답할 확률이 높다. ‘독일에 가장 좋은 대학은 없다. 하지만 나쁜 대학도 없다.’ 독일인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독일은 대학 간 서열이 없는 나라다. 대부분 대학이 정부 재정으로 운영되는 국립대여서 그렇다. 대학생 90% 이상이 국립대에 다니고 있다. 국립대는 독일 성장에 주춧돌 역할을 했다.
◇정부 지원이 기술강국 낳았다=독일이 기초과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인정받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대학이 산업계와 협력을 덜했기 때문이다.
독일 대학의 교수들은 산업계에 의해 연구가 이용되거나 기업에 종속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기업과의 협력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독일 대학총장협의회 토머스 카토이퍼 사무총장은 “산업계는 연구개발의 목적이 단기적이고 자신의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반면 학계는 전체 사회의 이익을 목표로 멀리 내다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독일에서 산학협력은 제한된 분야에서만 이뤄진다.
독일 대학의 연구자들이 자신 있게 산업계의 손을 뿌리칠 수 있는 이유는 정부에서 연구비를 충분히 지원받기 때문이다. 굳이 산업계에서 자본을 끌어올 이유가 없는 것이다. 대기업이 대학 건물을 지어주는 일도 독일에서는 흔하지 않다.
◇전체 대학이 우수하다=독일에서는 최고 수준의 대학이 1∼2곳 있는 것보다 전체 대학이 골고루 우수한 게 더 좋다는 사고가 일반적이다. 연구지원 기관인 독일 학술자문회의의 사비네 베흐렌벡 박사는 “독일에는 미국 하버드대와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같은 대학이 없지만 전체 대학이 우수하다. 우리는 이게 독일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독일 학술진흥재단의 비테 토머스 박사는 “투입되는 비용에 따른 결과를 비교하면 독일 대학이 미국 대학에 비해 더 효율적이다. 미국 대학은 우리보다 예산이 3∼4배 이상 많다”고 했다.
독일 연방정부가 2006년부터 시작한 우수대학 육성 프로그램도 몇몇 대학을 위한 지원이 아니라는 게 사업을 주관하는 학술자문회의·학술진흥재단의 설명이다. 학술자문회의 잉카 스팽그라우 박사는 “지원을 신청한 국립대 77곳 가운데 45곳에 지원금이 돌아갔다. 대학 수준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정권 바뀌어도 일관된 지원=우수대학 육성 프로그램에 선정된 대학에는 5년간 재정 지원이 이뤄진다. 2006∼2011년이 1차, 2012∼2017년이 2차 지원기간이다. 독일 연방정부는 1차 때는 19억 유로(약 2조7700억원)를 투입했고, 2차에서는 27억 유로(약 3조9300억원)를 쓴다.
주목할 점은 정권이 교체되었음에도 사업이 지속됐다는 것이다. 우수대학 육성 프로그램을 처음에 제안한 것은 사민당 정권이었다. 현 집권당인 기민당은 전 정권이 시작한 일을 그대로 이어받아 추진하고 있다. 베흐렌벡 박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학 지원 정책이 바뀌면 어떻게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겠느냐. 이처럼 정부가 신뢰를 줘야 더 우수한 연구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주도의 대학지원 정책은 위기에서 더 강하다. 토머스 박사는 “2008년 이후 전 세계적 금융위기 가운데서도 독일 대학은 별 문제없이 정부 지원을 받고 있다”면서 “외부 기부금 등에 종속된 미국 대학과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라고 말했다.
◇유학생 지원으로 친독파 형성=독일 대학은 자국 학생뿐 아니라 외국인 유학생에게도 등록금을 받지 않는다. 외국인에게 등록금을 더 받는 미국과 정반대다. 여기에는 전략적 이유가 있다.
독일은 스스로를 무역중심 국가로 여긴다. 천연자원이 부족해 제조업 수출이 아니면 살길이 없다는 자각이 있다. 따라서 물건을 사고팔아야 하는 상대국과의 관계를 매우 중시한다. 특히 대학을 외국과의 문화적 관계의 구심점으로 생각한다. 독일로 유학 온 학생이 훗날 자국으로 돌아가 일종의 문화대사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 독일은 전 세계에서 대학 동문회 운영을 지원한다. 우리나라에도 한국독일동문네트워크(ADeKo)가 있다.
독일 대학은 국제화에도 공을 기울이고 있다. 수년 전부터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듣고 학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국제 학위과정을 400개 마련했다.
본·쾰른=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