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목사의 시편] 동참

입력 2013-04-28 16:56


학교에서 돌아온 중학생 딸이 잔뜩 열이 났다. 이유인즉 담임선생님께서 ‘단 한 명이라도 숙제를 못하면 모두가 집에 못 간다’는 엄명을 내리신 것이다. 문제는 숙제를 잘 못하고 뒤처지는 한 명의 친구 때문에 그날 모든 학생이 피해를 본 것이다. 평소 소위 ‘왕따’였던 그 친구는 이 일을 계기로 더욱 더 친구들의 미움의 표적이 돼버렸다. 나는 딸아이를 앞에 두고 설득을 했다. “그 학생이 얼마나 힘들겠니. 너라도 그 학생의 친구가 되어 줄 수 없겠니. 그 친구의 부모님은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만약 내 딸이 그런 처지라면 아빠는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을 거야!” 이런 말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지면서 그만 눈물을 흘리며 울먹이고 말았다. 내가 울자 딸아이가 당황을 했다. 그러면서 내 딸도 그 자리에서 나와 같이 눈물을 닦으며 엉엉 우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울음바다가 되었다. 전혀 의도하지 않은 일이었다.

내 감정이 순간 왜 그렇게 격해졌을까? 아마도 그날 하루 종일 묵상하던 메시지가 내 마음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동참’이라는 주제였다. 우리와 한 운명체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통의 현장에 동참하셔서 우리와 ‘함께’ 고통당하신다는 메시지다. 그 아이와 그 아이의 부모의 고통이 내게는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고통’으로 다가온 것이다.

기독교상담가 데이비드 시맨즈는 그가 만난 한 여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릴 적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해 한평생 그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여인이다. 무슨 말도 그 여인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마음이 열리고 치유의 길이 열린 계기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그림을 보며 거기서 듣게 된 메시지 때문이다. 벌거벗음의 수치를 당하시고 모욕을 받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며, 예수님은 성폭행당한 자신의 고통에 대해 구경꾼이 아니라 ‘함께’ 동참하신 동참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본 것이다.

에스겔서에는 내 마음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은 메시지가 하나 있다. 바로 이 메시지다. 하나님께서 그발강가 포로수용소에 있는 에스겔에게 말씀으로 찾아오셨다. 그리고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환상은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서, 당신의 백성들이 당하는, 바로 그 고통의 현장을 찾아가시는 장면이다. 우리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편히 앉아서 그 백성들의 고통을 구경하고 계신 분이 아니셨다. 고통의 현장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이셨다. 결국은 십자가까지 찾아오신 것이다. 십자가는 이 사실에 대한 최종적인 확증이 아닌가? 정신없이 힘들고 고통스런 순간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한 가지 진리가 있다면 이것이 아닐까.

딸아이 앞에서 약간 쑥스럽긴 했지만 나는 그 덕분에 딸아이에게 기특한 답변을 얻어냈다. “아빠, 제가 그 친구와 함께 있어 줄 거예요.” 오늘도 내 고통에 동참하시는 그분이 너무 좋다.

<서울 내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