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 조선인 마을로 간 조르바… 식민지 진흙탕서 더 빛난 자유인

입력 2013-04-28 16:49


연극 ‘라오지앙후 최막심’. 제목이 독특하다. 떠돌이라는 뜻의 중국어 ‘라오지앙후’, 한국의 흔한 성 최씨, 러시아에서 흔한 이름 막심. 중국어 한국어 러시아어가 섞인 제목은 주인공 최막심의 캐릭터를 상징한다. 1941년 격동기, 만주나 간도 등을 떠돌며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그 시절 어디에나 있을법했던 남자. 그는 “어머니가 나를 낳고 후회가 막심해 이름이 막심”이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라오지앙후 최막심’은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연극. 인간에게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다. 배삼식 작가의 각색을 거치며 소설 속 배경인 1800년대 말 그리스 크레타 섬은 1941년 연해주 조선인 촌락으로 바뀌었다.

최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배 작가는 “원작의 핵심을 살리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고 말했다. 크레타 섬은 그리스 본토와는 다른 공간. 터키와 그리스 사이의 참혹한 분쟁을 겪은 지역이다. 작가는 일제 식민지시대 많은 조선인이 이주했던 만주와 간도를 떠올렸다. 러시아와 일본의 입김에서 자유롭진 못했지만, 어느 곳도 온전한 지배력을 갖지 못했던 경계의 공간. 그곳이 이 작품의 배경이 됐다.

배 작가는 “최막심을 내세워 진흙탕 같은 현실에서 몸부림치면서 고민하던 당시 지식인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양정웅 연출가는 “사유와 관념에 대한 소설의 방대한 깊이를 한국적인 이야기로 멋지게 해석한 대본이 나왔다. 여기에 로맨스와 노래 춤을 섞어 무겁지 않은 음악극 형식으로 풀어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타, 아코디언, 우쿨렐레, 트럼펫 등 악기를 적극 이용해 시대 분위기를 살리겠다는 것.

연극은 소설의 화자 ‘나’를 ‘김이문’으로 ‘조르바’를 ‘최막심’으로 바꾼다. 책에서 배운 규율에 얽매인 ‘나’와 호기로운 자유인 ‘조르바’의 성격을 김이문과 최막심에게 각각 대입한 것.

최막심 역의 남경읍은 “연습하다보니 거의 셰익스피어 연극 수준으로 대사가 많다. 난 뮤지컬 배우인데 왜 연극에 캐스팅됐지 했더니 노래와 춤도 춰야 하더라”며 웃었다. 김이문 역을 맡은 한윤춘은 “이 연극을 준비하며 명치끝에서 꿈틀거리는 설렘을 느꼈다”며 “하루 15시간씩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로 데뷔 40주년을 맞는 오미연도 반갑다. TV에서 주로 얼굴을 볼 수 있던 그는 조선인과 베트남인 사이에서 태어난 여각 주인 오르땅스 역으로 무대에 선다. 5월 8일∼6월 2일 서울 명동예술극장. 만 16세 이상 관람가. 2만∼5만원.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