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철수] ‘식수 차단’은 큰 압박카드… 개성시민 10만명도 함께 써

입력 2013-04-26 22:13 수정 2013-04-27 00:35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26일 남북관계의 최후보루이자 마중물인 개성공단에서 우리 측 인원 전원 철수를 발표하면서 ‘대한민국 정부 성명’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긴급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소집해 결정한 중대 조치라는 의미다.

박 대통령이 이처럼 강수를 둔 것은 식량과 의료품이 부족한 상황에서 더 이상 개성공단에 우리 국민을 남겨둬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강하게 작용했다. 또 개성공단을 ‘볼모’로 갖가지 트집을 잡고 있는 북한에 더 이상의 협박은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 한다는 분석이다.

우리 측 인원 철수는 신속하게 이뤄진다. 27일 귀환하는 127명은 대부분 입주기업 관계자들이다. KT, 한국전력 등 관계기관 직원, 개성공단관리위원회 관계자 등 48명은 이후 순차적으로 돌아온다. 정부는 우리 측 인원을 모두 철수시킨 뒤 개성공단 식수를 끊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단수(斷水)는 북한엔 ‘압박 카드’로 작용할 수 있다. 공단 내부에만 공급되는 전기와 달리 식수는 10만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개성 주민들이 함께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의 경우 경기도 파주 문산변전소에서 개통·단절이 가능하지만 식수는 현지에 우리 측 인원이 개성공단에 상주해야만 공급이 가능하다. 따라서 정부는 식수를 담당하는 수자원공사 직원과 개성공단관리위원회 관계자를 마지막으로 철수시킬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우리 인원을 안전하게 귀환시킨 뒤 후속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우리 측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북측에 ‘남북 사이의 투자보장에 관한 합의서’ 준수를 요구할 계획이다. 합의서는 ‘남과 북은 자기 지역 안에서 법령에 따라 상대방 투자자의 투자자산을 보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합의서는 조약과 같은 국제법적 효력이 있지만, 이미 북한은 금강산에서 우리 정부와 민간의 투자자산을 몰수·압류하고 재산권을 처분한 바 있어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는 입주기업으로부터 피해액을 산정한 뒤 추가 지원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당분간 우리 측과 북측의 협상이 이뤄질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다. 통일부 당국자는 ‘대화를 제의하느냐’는 질문에 “아니다. 이미 대화에 나오라고 했다”고 잘라 말했다.

다만 우리 측이 공단 폐쇄라는 극단적 조치를 내리지 않았고 북한도 ‘철수 인원의 신변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한 만큼 이달 30일 한·미 군사훈련인 독수리연습이 끝나고 다음달 초 한·미 정상회담이 개최된 뒤 한반도에서 유화적 분위기가 생길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