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멀다하고 구급차 소리… 겨울보다 더 추운 쪽방촌의 봄
입력 2013-04-26 18:28
서울 돈의동 르포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 서울 돈의동 103번지 쪽방촌에 구세군이 쌀 7t을 싣고 왔다. 1평 남짓한 공간에서 혹한을 견디는 이들을 위로했다. 지난해 가을에는 롯데그룹 등 기업에서 추석선물을 들고 왔고, 그해 여름엔 박원순 서울시장이 직접 폭염 피해를 점검하러 왔다.
그리고 계절이 세 번 바뀌어 찾아온 ‘쪽방촌의 봄’. 돈의동 사랑의 쉼터 김성만 팀장은 26일 “봄은 쪽방 주민들이 사회의 관심에서 가장 멀어지는 시기”라고 했다. 너무 춥거나 너무 덥거나, 아니면 명절이나 돼야 바깥세상과 어울릴 수 있는 이들에게 봄은 ‘외로움을 타는 계절’이란 말이다.
쪽방촌에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건 구급차 사이렌 소리였다. 650여명 주민은 절반 이상이 50∼80대 장·노년층이다. 이곳에 오기까지 험한 세월을 보낸 터라 대개 한두 가지 병을 앓고 있다. 혹독한 겨울을 견디느라 기력이 쇠한 탓인지 봄이 되면 응급실에 실려 가거나 세상을 떠나는 이가 많다.
23일 저녁 ‘24호’ 쪽방 김모(66)씨가 방에 반듯이 누워 숨진 채 발견됐다. 직업 없이 기초생활수급비로 생활하며 겨우내 병원을 들락거렸다고 한다. 21일에는 124호에서 당뇨 합병증을 앓던 60대 노인이 숨졌고, 20일 밤에는 30분 간격으로 구급차 2대가 들어와 응급환자를 실어갔다.
90호에 사는 강모(37)씨는 “요즘 이틀에 한 번씩은 구급차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홀몸인 쪽방 사람들이 병원이나 경찰서에 갈 때 강씨는 종종 ‘보호자’ 역할을 한다. 20일 밤 그를 만난 곳은 종로경찰서였다. “86호가 술 취한 젊은이한테 얻어맞았어요. 한 달에 두세 번은 술 취한 사람들이 쪽방촌에 들어와서 이런 일이 생기는데….”
‘86호’는 말투가 어눌한 65세 김모씨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주민들이 편의상 붙인 방 번호는 이 동네 사람들의 호칭이 됐다. 강씨는 봉제사로 일하다 실직해 이곳에 왔다. 역시 기초수급비 월 47만원으로 생활하며 그중 22만원을 월세로 낸다. ‘일세(日貰)’도 있어서 8000원이면 하룻밤 재워준다.
강씨가 형님이라고 부른 박모(57)씨는 쪽방에 들어온 지 14년째였다. 전북 정읍에서 올라와 중국집 주방장을 했지만 술 때문에 돈을 모으지 못했다. 지금도 북창동 일대 중국집에 일용직으로 일하러 다니는데 그것도 경쟁이 치열해서 일주일에 이틀 일하면 운이 좋은 편이다. 이날도 술을 한잔 했는지 불콰한 얼굴로 “왜 정부에서 나는 기초수급자로 해주지 않느냐”고 한참을 하소연했다.
돈의동 쪽방촌에는 주민들이 ‘명동’이라 부르는 골목이 있다. 높은 집이 많고 방도 상대적으로 깨끗하다. 23일 저녁 이 골목을 어슬렁거리며 만나는 사람마다 “형님!” 하고 인사하던 노모(47)씨는 곧 쪽방촌을 떠나 이사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 동네 30·40대의 꿈이라는 ‘쪽방 탈출’이 실현된 것이다.
노씨는 야구선수였다. 서울 모 대학 야구팀 좌익수였는데 프로팀에 입단하지 못했다. 중·고교 코치 자리를 알아보다 결국 구하지 못해 지금은 치킨 배달을 한다. 쪽방생활 3년째이고, 두산 베어스 홍성흔 선수가 자신의 고교 후배라고 했다.
“젊은 사람들은 다 여기를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실제 떠나는 사람은 몇 안 된다. 반면에 노인들은 재개발 소문만 돌아도 불안해한다. 80∼90%가 기초수급자인데 이런 방이라도 없으면 어디로 가겠나.”
그는 “여기 사람들이 만날 술만 마시는 것 같지만 절반은 일을 나가고 나머지 절반은 노인이거나 환자”라며 “난 이 동네에 정이 들어서 이사 가도 자주 놀러올 생각”이라고 했다.
이날 오전에는 네덜란드 사진가 루드 바커(47)씨가 좁다란 골목을 오가며 쪽방촌 구석구석을 렌즈에 담고 있었다.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아 방문한 길에 이 동네를 발견하고 다큐멘터리 영상물을 만드는 중이다. 주민 대부분이 가족도 없이 홀로 사는 동네, 그것도 1년 중 가장 외롭다는 쪽방촌의 봄을 보고 그는 “여기 사람들은 정말 활발하게 서로 소통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참 대화를 많이 한다. 무슨 얘기인지 알아들을 순 없어도 이웃의 사정을 잘 아는 눈치였다. 서울 지하철을 타봤는데 거기선 사람들이 휴대전화만 쳐다보느라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더라.”
김미나 김동우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