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참모들 ‘불통의 장막’] 기자 기피증
입력 2013-04-27 03:59 수정 2013-04-27 04:14
“어디 가서 나 만났다는 말은 하지 말아 주세요.”
며칠 전 점심시간 서울 삼청동 한 식당에서 만난 청와대 비서관은 식사자리가 끝나갈 무렵 이런 부탁을 했다. 한참 동안 새 정부의 국정운영과 청와대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던 그는 기자들을 만난 사실이 다른 곳에 알려지는 게 무척 부담스러운 기색이었다.
요즘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들은 연락이 잘 되지 않는다. 통신보안이 철저하게 이뤄지는 ‘업무폰’을 지급받았지만 기자 전화는 거의 받지 않는다. 박근혜정부 출범 직후에는 그나마 이들의 휴대전화가 열려 있었다. 어렵게 취재차 전화를 하면 온도의 차이는 있지만 응했다. 어떤 이는 민감한 질문에 난색을 표했고 또 다른 이는 자신이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답을 해줬다. 받지 못한 전화에 ‘콜백(Call Back)’을 해주는 성의도 보였다. 그러던 ‘대통령의 사람들’이 요즘 연락두절이다.
김장수 실장 이하 국가안보실은 비서관에서 말단 행정관까지 언론과의 접촉이 차단돼 있다. 곽상도 수석이 이끄는 민정수석실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2월 25일 이후 두 수석실 관계자들에게 기자들이 건 전화의 총량은 얼추 수천 통이 넘는다. 그래도 국가안보실이 북한의 전쟁 위협 속에 각종 안보 관련 국가기밀을 다루는 곳이고, 민정수석실은 민감한 인사검증을 도맡는 부서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정도는 이해가 되는 선이다. 그렇지만 대언론 접촉 창구인 이남기 홍보수석이 아예 전화를 받지 않는 건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다.
지난 14일 유민봉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은 춘추관 출입기자들을 모두 초청해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명쾌한 논리와 설명으로 주목받았던 그는 이날도 차근차근 새 정부의 주요 국정을 해설했다. 하지만 1시간반 정도의 간담회가 끝난 직후 기자실에는 ‘유 수석의 오늘 발언은 오프더레코드(off-the-record)’라는 알림이 전해졌다. 이처럼 청와대 수석들과 기자들의 점심자리에는 어김없이 ‘오프더레코드’가 전제된다. 박 대통령의 핵심 참모들의 국정을 바라보는 시각은 단 한 줄도 기사로 쓸 수 없다는 얘기다.
청와대에는 크게 세 건물이 있다. 대통령이 각계각층 인사들을 만나고 행사를 갖는 본관이 위용을 자랑한다. 광화문을 바라보고 그 오른편에 청와대 참모들의 업무공관인 위민관(爲民館), 왼편에는 춘추관(春秋館)이 자리 잡고 있다. 이름에서 보듯 위민관은 국민을 위한 국정 운영의 중심이고 춘추관은 역사를 기록한다는 뜻답게 기자들이 상주한다.
그런데 춘추관에서 위민관으로, 위민관에서 춘추관으로의 언로(言路)는 언제부터인가 두꺼운 장막으로 차단돼 있다. 서로 ‘통(通)’하는 게 없으니 불협화음이 계속 생긴다. 한쪽에서는 “말하지도 않았던 게 왜 보도가 되느냐”는 불만이고 다른 쪽에선 “대체 국정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한다.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는 두 번의 브리핑이 있었다. 박 대통령이 ‘법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행한 발언, 쉐만 미얀마 의장과 나눈 환담 내용을 알리기 위해 대변인이 두 번 왔다 갔다. 그리고 기자들이 건 수십, 수백 통의 전화에는 응답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또 춘추관의 하루가 지나갔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