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성도’를 아십니까] “자유롭게 신앙생활”… 교회 떠도는 기독인 많다
입력 2013-04-26 17:41
경기도 부천시 한 교회 집사인 A씨(42)는 일요일도 출근하는 직업 특성상 주일성수를 제대로 못한다. “교회에 갈 시간이 없다”는 그는 현재 교회를 ‘쉬고’ 있다. 그렇다고 A씨가 예배를 드리지 않는 건 아니다. 인터넷으로 주일 예배를 드리고 평일엔 스마트폰으로 묵상의 시간을 갖는다. 그는 현 상황에서 열심히 믿음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B씨(47·여)는 주일이면 ‘인터넷 교회’를 찾아다닌다. 모태신앙인 남편을 따라 서울의 한 대형교회에 정착한 그는 그러나 중학생 딸이 교회학교에 적응하지 못하자 집 근처 작은 교회로 옮겼다. 옮긴 교회는 아주 적극적이었다. “성경공부를 하자” “친교하자” “봉사하자”며 주일은 물론 평일에도 B씨와 계속 접촉했다. 몇 달이 지난 뒤 B씨는 본인의 말마따나 ‘자유’를 찾아 그 교회를 떠났다. 지금은 말씀 좋은 목회자들의 설교를 들으러 주일이면 인터넷 설교를 듣는다.
소위 ‘가나안 성도’라 불리는 이들이다.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은 확고하지만 교회에 출석하지 않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찾아 다녔듯 ‘새로운’ 교회를 찾아다니는 사람을 말한다. ‘가나안’을 거꾸로 읽으면 ‘안나가’이다. 기독교인이면서 교회를 나가지 않는, 자의반 타의반 기성교회를 거부하는 가나안 성도는 그러나 언제든 교회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잠재적 출석 교인’이다.
‘가나안 성도’ 누구고 얼마나 되나
목회자와 신학자들에 따르면 이들은 대부분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고 비교적 순탄한 중·고등부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가 직장과 결혼 생활을 하면서 점차 신앙에 소홀해지고 ‘교회 출석이 반드시 잘 믿는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실천신학대학원대 조성돈(목회사회학) 교수는 25일 “기존 교회의 구조와 권위에 대해 의문을 갖고 주일성수와 같은 교회의 규율 등에 대해 답답함을 느낀 이들이 교회와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교회를 멀리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 나선 것”이라며 “가나안 성도는 성장하고 있는 세대들의 변화를 교회가 받아주지 못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가나안 성도의 수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가 전국 7대 도시 18세 이상 기독교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해 지난 19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기독교인이지만 교회에 나가지 않는 비율이 10.5%였다. 크리스천 10명 중 1명이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지 않는 ‘가나안 성도’로 추정된다.
왜 교회를 떠나는가
지난 25일 서울 명동 청어람에서 열린 ‘갈 길 잃은 현대인의 영성’ 세미나는 가나안 성도에 대해 살펴보고 한국교회가 어떻게 하면 이들을 품을 수 있는지를 모색해보는 뜻 깊은 자리였다. 이 세미나에서 실천신학대학원대 정재영(종교사회학) 교수는 가나안 성도 316명을 대상으로 2월 4일부터 10일간 설문을 실시, ‘소속 없는 신앙인’에 대한 실질적인 자료들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교회를 잘 다니던 이들이 ‘가나안’이 된 이유에 대해 응답자의 30.3%는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응답자들이 교회를 떠난 이유가 기독교 그 자체나 교회의 비리·상처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관이 변한 데 따른 것이라는데 있다. 이는 ‘교회이탈 전 출석교회 상태’를 묻는 질문과도 일맥상통한다. 응답자의 42.2%가 “교회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우리 사회에는 신앙에도 집단주의적 요소가 작용해 자신의 신앙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한다든지, 자신과 같은 신앙을 갖지 않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갖는 경우가 있다”며 “가나안 성도는 이처럼 ‘강요받는 신앙’ 생활에 대한 부담을 안고 있다”고 분석했다.
소통의 단절도 한 요인이다. 설문에서 46.5%가 ‘교회 이탈 전 상담 대상이 없었다’고 대답했다. 이들은 교회를 떠나면서 가족(31.9%) 교우(25.8%)들과 의논했다. 정 교수는 “신앙의 문제를 고민할 때 담임목회자나 부교역자가 상담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은 목회자와 교인들 사이가 원만하지 않거나 인격적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나안 성도, 교회가 품어야
이들은 ‘자유’를 찾아 교회를 떠났지만 교회에 대한 관심의 끈은 놓지 않았다. 설문에서 응답자의 67%가 “다시 교회에 나가고 싶다”고 말함으로써 교회를 향한 ‘열린 마음’을 드러냈다. 이제 한국교회가 나서 이들의 손을 잡아야 한다는 명제가 확인된 셈이다.
조 교수는 “가나안 성도는 채워지지 않는 신앙의 갈급함, 교회라는 이름과 예배의 형식, 기도의 나눔 등 때문에 고민하고 아파하는 믿음의 형제·자매들”이라며 “이들이 영적 방황을 조금은 덜 고통스럽게 끝낼 수 있도록, 또한 그 순례의 끝에서 교회를 다시금 돌아볼 수 있도록 마음의 지지를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교회는 이들을 품을 수 있는 영적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섣불리 가나안 성도를 교회 내로 흡수하려 하기보다는 교회 공동체성을 먼저 회복하는 등 필요조건을 갖춰야 한다. 일산 로고스교회 안성우 목사는 “가나안 성도를 얘기하기에 앞서 참다운 교회의 모습, 목회자의 리더십, 개인의 영적인 특성, 교회 내 민주화 등 교회와 성도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이 같은 신앙의 건강지수를 점검해 보자”고 제안했다. 정 교수는 “한국교회가 다양한 생각을 가진 개인들을 존중하고 포용하며 서로간에 소통할 수 있는 진정한 공동체로 거듭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