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재 박사의 성서 건강학] 생명나무열매

입력 2013-04-26 17:22 수정 2013-04-26 21:26


창세기 3장의 맨 끝 절에 화염검(火焰劍)을 세워서 생명나무열매를 지키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기록돼 있다. 같은 장의 바로 위 내용을 보면 생명나무열매를 인간이 따 먹고 영생할까 염려된다는 구절 또한 눈에 띈다. 결국 생명나무열매란 생명복제와 그 의미를 같이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생명나무열매를 따 먹으려는 인간으로부터 그 열매를 지키시겠다는 것은 곧 생명복제를 막으시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행히 전세계 어느 나라도 인간의 생명복제를 공식적으로 허락하고 있지 않으니 다행스런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2000년 새로운 세기가 열린 뒤 지난 10여년의 역사를 돌아볼 때 생명복제와 관련된 연구분야에서 생명윤리를 둘러싼 대혼란이 있었음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질병치료라는 대의명분을 표방하며 생명복제를 가능하게 하는 연구 기법들이 속속 등장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마음만 먹으면 인간의 생명을 복제하는 일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과학계의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생명공학의 시대를 표방한 금세기는 생명복제가 중요한 화두로 그에 관련된 줄기세포 연구가 과학계를 지배하고 있다. 문제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유전자 조작과 분석을 통한 맞춤치료 또한 현 과학계의 큰 흐름이요 대세다. 유전자 조작 관련 기술이 들어가지 않으면 연구비를 지원받기 어려운 것이 21세기 과학계의 현주소라 할 정도다. 과연 인간에게 허락된 연구의 영역은 어디까지일까. 과학의 발전사를 돌아볼 때 질병극복이나 인간복리증진이라는 대의명분 하에 이루어진 연구 결과임에도 인간의 삶에 대재앙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예는 한둘이 아니다. 이런 차원에서 21세기 들어 새롭게 대두된 바이러스 질환의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이러스 질환은 인류와 역사를 같이해 왔다. 특이한 것은 인간이라면 감염을 결코 피할 길 없는 감기 혹은 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에 심각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바이러스가 변종을 일으키는 것은 흔한 일이다. 21세기 들어서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결코 아니다. 그런데 그 변종의 결과로 결코 죽음을 생각할 수 없던 흔한 질환인 감기 혹은 독감이 죽음을 걱정해야 할 치명적 질환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급성중증호흡기증후군(SARS)은 인간이 흔히 겪는 감기바이러스의 변종으로 생긴 새로운 질환으로 10% 가까운 치명률을 보이고 있다. H1N1 신종독감은 인간의 계절독감의 변종으로 탁월한 치료제 (타미플루 등) 덕에 쉽게 진정됐지만 그 치명률 또한 10% 이상으로 봐야 한다. 인간에게는 감염될 수 없는 것으로 이제껏 알려져 왔던 조류독감(H5N1)은 종(種)의 벽을 넘어 인간에게까지 감염을 일으키고 있고 그 치명률은 60%를 넘는다. 실로 두려운 일이다.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존재하는 단백질을 뜻하는 H와 N에 붙어 있는 숫자(H1∼H9, N1∼N15)가 낮을수록 사람에게 감염되는 독감이고 그 숫자가 높을수록 조류에게만 감염되는 독감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람은 잘 감염되지 않던 H5N1 조류독감의 경우 사람에게 감염돼도 그럴 수 있겠구나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중국에서 발생해 계속 번지고 있는 새로운 조류독감(H7N9)은 다르다. 이제 독감의 감염에서는 종간(種間)의 벽이 완전히 허물어졌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유전자 분석이나 조작이 과학계를 지배하는 시대에 유전자로만 된 가장 작은 생명체인 바이러스에 나타난 변종이라는 현상, 새로울 것도 없는 그 현상이 치명적 질병을 낳고 있는 두려운 현실을 어찌 해석해야 할지 과학자들의 자성적 성찰이 필요한 때다.

<서울대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