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개미의 순환보직

입력 2013-04-26 17:55

“어느 날 외계인들이 우리 행성에 도착한다면 그들은 겉모습에 속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틀림없이 개미들과 대화하려고 할 것이다. 개미들이 지구의 진정한 주인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에 나오는 말이다. 작가는 그 이유로 개미가 지구상에서 인간보다 훨씬 더 많은 생태 구역을 차지하고 있으며, 훨씬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거기에 보탤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개미는 지구의 주인을 자처하는 현대인과 가장 비슷한 생활 구조를 갖고 있는 동물이라는 점이다.

인간은 약 1만년 전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개미는 5000만년 전부터 농사를 지었다. 식물의 잎을 잘게 잘라서 쌓아놓고는 그 위에 버섯을 재배해 먹는다. 지구상에서 농사를 짓는 동물은 사람 외에는 개미와 흰개미, 나무좀 등 단 3종뿐이다. 심지어 비료를 주기도 한다. 중남미의 가위개미는 질소고정 박테리아를 이용해 버섯을 재배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개미는 낙농업도 할 줄 안다. 진딧물 떼를 이리저리 몰고 다니며 그들이 식물로부터 빨아올린 단물을 주요한 식량원으로 사용한다. 진딧물 외에도 깍지벌레나 매미충, 나비애벌레 등의 다양한 가축을 기른다.

전쟁을 일으켜서 제압한 상대를 노예로 삼는 행위도 인간과 똑같다. 전리품으로 얻은 상대편 개미의 알에서 어린 개미가 태어나면 여왕개미의 꼬리에서 나오는 화학물질을 발라 평생 노예로 부려먹는다. 동족을 노예로 부리는 것은 인간과 개미뿐이다.

개미들은 경로 우대로써 노화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도 갖고 있다. 가위개미들은 식물의 잎을 자를 때 이와 턱 사이에 있는 V자 모양의 날을 이용한다. 늙으면 이 날이 처음보다 340배나 무뎌져 잎을 자르기 힘들게 된다. 그럴 경우 늙은 개미들은 순환보직을 해 잎을 운반하는 일에만 종사한다.

최근 스위스 연구진이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개미들의 순환보직은 매우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연구진은 실험실에서 6개의 개미 집단을 사육하면서 모든 개미의 등에 미세한 태그를 붙인 다음 컴퓨터를 이용해 2초 단위로 움직임을 추적했다. 그 결과 개미들은 나이가 들면서 시종개미→청소개미→수렵개미로 보직이 바뀌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 순환보직이 이루어지는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 동 연구진이 후속연구를 계획하고 있다고 하니 그 결과도 참 기대된다.

이성규 (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