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광형] 올바른 문화홍보대사의 길
입력 2013-04-26 17:55
“제가 문화홍보대사 역할도 하려 합니다. 이번에 미국에 가서도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서 우리 문화예술인들의 작품 등 우리 문화를 소개하고 아름다움을 공유하는 기회를 갖게 되는데, 문화예술인들도 참여시키려고 합니다. 앞으로 외국에 나갈 때마다 그런 기회를 만들 것입니다. 문화와 어우러진 창의적인 구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4일 언론사 편집국장 및 보도국장단과의 오찬간담회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문화융성시대를 강조하는 박 대통령이 이를 해외에 널리 알리기 위해 홍보대사를 자처하겠다는 것이다. 문화예술계로서는 막강한 지원군을 얻었으니 환영의 박수를 보낼 만하다. 사실 대통령보다 더 힘 있는 홍보대사가 어디 있겠는가.
홍보대사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그 분야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연예인을 내세운 무슨 무슨 홍보대사가 많지만 대부분 전문성이 부족하다 보니 홍보용 사진 한 번 찍고 그것으로 끝이다. 적극 활동하는 경우도 있지만 1년에 한두 번 반짝 행사로 그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홍보대사도 아니고 ‘대한민국 문화홍보대사’는 그럴 수 없다.
할 일이 태산 같은 대통령에게 전문적인 식견까지 요구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는 꿰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꾸준한 관심과 이해가 필요하다. 틈나는 대로 자료를 검토하고 현장을 둘러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보좌진도 대통령을 적극 도와야 한다. 우리 문화예술에 대한 연구나 사전 지식도 없이 해외에서 막연하게 싸이가 어떻고, 백남준이 어떻다는 식으로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박 대통령은 문화융성시대를 열기 위한 전제조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무엇보다도 문화, 예술, 한류에 종사하는 모든 분들의 얘기를 충분히 들으면서 그분들이 추구하는, 역량을 발휘하고 싶은 부분을 열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화 한류가 더 좋아지도록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문화기본법’ 제정에 대한 구상도 밝혔다. “국회에서 입법을 준비하도록 하려 합니다. 국민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문화가 생활 속에 스며들어야 합니다. 가칭 문화융성위원회를 만들어 소통의 장을 만들고, 뒷받침하거나 정책적으로 생각할 것이 있으면 지원하는 방향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문화정책을 떠올리는 원로 문화예술인들이 많다. 현장 답사를 즐겨한 박 전 대통령이 문학 미술 음악 공연 문화재 등 각 분야에서 정책의 틀을 만들고 적극 지원했다는 것이다. 아버지에 비하면 박 대통령의 문화정책은 다분히 선언적이고 추상적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문화융성’이라는 단어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3년 만에 개인전을 준비한 50대 한 화가는 1000만원의 전시 비용을 빌리기 위해 은행을 찾았다. 은행에서는 담보용 서류와 직업증명서 등을 요구했다. 예술인 자격증명서를 떼기 위해 한국예술인복지재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술 분야의 예술인 자격 조건은 최근 1년 동안 개인전이나 그룹전 등에 참가한 이력이 있어야 한다. 실업자 신세인 이 화가는 결국 전시를 포기했다.
모든 문화예술인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자부심을 갖고 작업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조성이 중요하다. 문화예술인들이 행복하게 작업할 수 있어야 이를 향유하는 국민들도 더불어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기반 없이 하는 홍보는 ‘속빈 강정’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홍보대사의 임무가 막중하다.
이광형 문화생활부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