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선 테러·기독교 탄압… 엄마와 생이별”
입력 2013-04-25 19:01 수정 2013-04-25 23:49
레바논으로 피신… 13세 소녀 자흐라의 슬픔
이라크 소녀 자흐라(13·가명·사진)는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한 저렴한 호텔에서 두 달째 살고 있다. 보통 아이들과 다른 건 학교에 가지 않고, 엄마 없이 아빠와 둘이 산다는 점이다. 자흐라는 호텔 로비와 방에서 놀거나 호텔을 둘러싼 작은 숲에서 나무 열매를 따며 시간을 보냈다. 하루 종일 그랬다.
자흐라를 처음 만난 건 지난 15일이었다. 분홍색 티셔츠와 바지를 입은 자흐라와 호텔 로비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마르하바(안녕)”라고 인사하며 초콜릿이나 나무 열매를 주고받는 정도였다. 자흐라는 선물을 한 번에 받은 적이 없었다. 두 손을 뒤로 빼거나 미안해하며 도망쳤다. 지나치게 예절이 바르지만 묘한 경계심이 보였다. 어쩌다 긴 여행을 시작했느냐고 물으면 “모른다”는 답을 했다.
자흐라와 긴 대화를 나눈 건 19일, 호텔을 떠나기 2시간 전이었다. 자흐라는 남색 매니큐어를 작별 선물로 손에 쥐어주었다. 부모님이 매니큐어를 못 바르게 한다고 거짓말을 하다 결국 받아들였다. 자흐라는 레바논으로 오게 된 이유를 처음 털어놓았다.
“삶이 위태로우니까.”
열세 살 소녀 입에서 나온 얘기에 짐짓 놀랐지만 태연한 척 자흐라가 준 매니큐어를 손톱에 바르며 눈을 바닥으로 향했다. 자흐라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테러 때문에. 여기 2년, 아니면 3년쯤 있겠지.”
미국에서도 공공연히 ‘실패한 전쟁’이라 평가하는 이라크전이 끝난 지 10년, 이라크에선 여전히 지독한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수도 바그다드를 비롯한 전역에서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 간 종파 분쟁이 일어난다.
자흐라의 가족은 수니파도 시아파도 아닌 소수파인 기독교도다. 자흐라는 살기 위해 어릴 때부터 무슬림인 척 거짓말을 했다. 2010년 11월 바그다드의 한 교회에서 인질극이 발생해 37명이 사망하는 등 과격주의자들은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를 저질렀다. 지난 10년간 90만명 가까운 기독교인이 이라크를 떠났다.
“학교에서 가장 친한 친구들만 내가 기독교인 걸 알아. 말하면 위험하니까 발설한 친구는 한 명도 없었어. 이라크에선 극단적인 사람들이 많아. 자이시 알 마흐디(이라크 내 최대 민병대)가 죽일 수도 있어.”
엄마의 친정 식구들이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진 어느 정도의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두 달 전, 그 사실이 알려지자 자흐라의 삼촌들은 아무도 없는 사이 엄마를 외가에서 데려갔다. 작별 인사도 할 수 없었다.
“엄마에게 전화는 해 봤어?”
“아니. 전화하는 건 위험하고, 그래서도 안 돼. 엄마는 휴대전화도 없어. 아빠가 엄마 가족들에게 전화해봤는데 연락하지 말라고 그랬대.”
“엄마는 너에게 오고 싶을 텐데.”
“그렇겠지.”
자흐라는 울지 않았다. 담담했다. 테러와 전쟁, 갈등과 분쟁, 체념과 포기…. 열세 살 자흐라는 이런 것들이 희망과 용기, 사랑과 평화보다 익숙해 보였다.
자흐라의 가족은 2010년 시리아로 도망쳐 2년간 머문 적도 있었다. 자흐라의 아버지가 테러리스트를 비판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려 화제를 모은 적이 있었는데 이후 아버지 차량이 폭발해 가족이 다리를 다쳤다. “단순 사고라고 생각하지 않아. 의도가 있는 테러였어. 테러리스트들이 복수심에 그런 짓을 한 거야.”
자흐라에게는 미군과 사형당한 독재자 사담 후세인에 대한 기억도 남아 있었다. “사람을 죽이는 미군도 있었고, 먹을 걸 나눠주는 착한 미군도 있었어. 미군이 무기가 있는지 보려고 이 집 저 집 다닌 기억이 나. 엄마는 사담 후세인을 좋아했지만 무서운 사람이야. 사람을 많이 죽였고, 다른 종파를 차별했어.”
자흐라에게 전쟁이 끝날 수 있을지에 대해 물었다. 물론 세상 모든 어른이 답을 모르는 질문이었다. “그건 어려울 걸. 마치 수탉이 알을 낳는 것과 같은 이치야. 만약 누가 평화를 만들려고 한다면 죽게 될 거야.” 자흐라는 이렇게 말하며 손으로 목을 자르는 흉내를 냈다. 기독교 인구가 약 35%인 타국 레바논에선 안전한 대신 행복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라크에선 전국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해 23일(현지시간)부터 사흘간 사망자가 140명을 넘어섰다. 종파 분쟁이 정쟁으로까지 확산하는 양상이다. 자흐라는 엄마가 있는 이라크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 아이가 준 남색 매니큐어를 보며 든 생각이다.
베이루트=글·사진 박유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