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43명 곗돈 46억 들고 튄 계주, 밥솥 하나·이불 들고 10개월 도피

입력 2013-04-25 18:00

박순자(가명·56·여)씨는 아들과 딸 둘이 취직 후 3년간 번 돈 5000만원을 잘 불려주고 싶었다. 남편과 사별한 후 세 남매를 키우면서 별로 해준 게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박씨에게 이모(63·여)씨가 다가왔다. 이씨는 “40년 가까이 계를 운영해 왔고, 연 이자 5∼6%를 주겠다”고 박씨를 꼬드겼다. 그러나 이씨는 지난해 7월 박씨가 믿고 맡긴 돈을 모두 들고 잠적했다. 박씨는 충격으로 혈이 막혀 쓰러졌고, 우울증까지 걸렸다. 약 10개월이 지난 25일, 박씨는 돈을 챙겨 사라졌던 계주가 잡혔다는 소식에 한걸음에 경찰서로 달려갔다.

서울 동작경찰서는 ‘새마을계’ 계주로 활동하면서 계원 43명으로부터 46억2000여만원을 가로챈 혐의(배임·사기)로 이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25일 밝혔다.

이씨는 2009년 1월부터 서울 노량진 일대 주부 43명에게 접근해 “높은 이자를 주겠다”며 돈을 끌어 모았다. 노량진 토박이인 이씨는 자신이 39년 동안 계를 운영해왔고, 남편 양모(66)씨가 지난 20년간 새마을금고 이사장으로 근무한 점을 내세웠다. 또 자신의 아들이 회계사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씨는 매월 86만∼143만원을 내고, 순서가 되면 3000만원∼5000만원을 받는 계 9개를 운영하다 지난해 7월 돌연 자취를 감췄다.

박씨는 “이씨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한 적도 있다”며 “힘들게 사는 걸 알면서 어떻게 내 돈을 가로챌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울분을 토했다. 계원 중 가장 많은 돈(약 6억원)을 사기당한 김모(70·여)씨는 “이씨를 안 지 30년이 됐고, 그간 이씨의 다른 계에선 문제가 없어 의심하지 않고 돈을 맡겼다”며 “싱가포르에 사는 큰아들을 비롯해 3형제와 며느리들 돈까지 전부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조사에서 “곗돈 일부를 사업에 투자했는데 빚이 10억원가량 생겨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이씨는 남편과 함께 경남 진주시의 한 연립주택에 월세로 숨어 지냈다. 도주하기 쉽게 살림살이는 밥솥 하나와 이불 두 개가 전부였다. 경찰은 양씨가 22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치료받고 귀가하는 것을 미행해 이씨를 검거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