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학과 여대생 이모(21)씨는 공연을 앞두고 몸매 유지를 위해 살 빼는 약을 찾다가 인터넷 블로그에서 히로뽕이 체중감량 효과가 있다는 글을 봤다. 이씨는 지난 2월 말 이 블로그를 통해 히로뽕 0.16g(5회 투약분)을 50만원에 구입해 투약했다. 주부 박모(37)씨와 정모(45)씨도 지난달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 블로그에서 히로뽕 3.5g을 450만원에 사서 함께 투약했다.
다이어트 열풍을 악용해 마약조직들이 평범한 여대생과 주부들에게까지 검은 손길을 뻗치고 있다.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는 헛소문에 마약 전력이 전혀 없는 이들도 유혹에 빠져들었다. 서울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는 25일 마약 판매 블로그를 개설해 일반인들에게 히로뽕을 팔아온 판매상과 투약자 12명을 적발, 3명을 구속하고 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주부 박씨 등 투약자들은 해외에 서버를 둔 구글 블로그에서 히로뽕 판매 광고를 보고 구입했다. 지난 2월 중순부터 3월 초까지 9명이 사들인 히로뽕은 모두 7g(900만원 상당)이다. 9명 중 8명은 마약 투약 전력이 없었고, 여성 5명은 모두 살을 빼기 위해 히로뽕을 투약했다. 미성년자인 신모(16)양은 영화에서 주인공이 ‘마약을 하면 몸속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느낌’이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고 호기심에 히로뽕을 받아 2차례 투약한 뒤 판매상의 마약 배달원 역할까지 했다. 다이어트 효과는 전혀 없었다. 투약자들은 오히려 약 기운이 떨어진 후 폭식을 하게 됐다고 경찰에 털어놨다.
이들에게 마약을 판매한 김모(32)씨 등 판매상 2명은 블로그에서 고객을 모은 뒤 히로뽕을 주사기에 담아 경기도 수원 등에서 구매자를 직접 만나 거래하거나 우체국 택배로 배달했다. 이들은 공급책 권모(41)씨로부터 히로뽕 8.4g을 구입해 팔면서 마약 경험이 없는 이들에게 백반가루 0.7g을 히로뽕이라고 속여 팔기도 했다.
평범한 사람들까지 마약에 손을 대는 건 유통수법이 갈수록 쉬워진 탓도 있다. 지난 22일에는 수도권 일대에서 KTX 수화물 택배를 이용해 히로뽕을 판매한 업자가 적발됐다. 지난달엔 일본 대마도 보따리상을 통해 들여온 ‘알라딘 엑스’ 등 신종 마약 4종 350g을 인터넷으로 판매한 일당이 경기도 안양에서 검거됐다.
마약 반입량도 증가했다. 대검찰청이 지난 1월 발표한 ‘2012년 마약류 사범 단속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산 마약류 1170억원어치가 국내로 반입됐다. 반입량은 히로뽕 23.4㎏(66%), MDMA 4㎏(11.3%), 대마초 2.7㎏(7.7%) 등 모두 35.1㎏으로 2011년(22.9㎏)보다 53.2%나 증가했다.
마약을 들여오는 지역도 다양해졌다. 2007년 이전엔 히로뽕의 95% 이상이 중국에서 유입됐지만, 지난해에는 중국의 비중이 51.6%에 그쳤다. 대신 대만(5㎏), 피지(2.4㎏), 케냐(1.7㎏) 등 다양한 지역에서 히로뽕이 유입되고 있다.
경찰은 주로 첩보 수집을 통해 마약을 적발하고 있다. 그러나 마약 유통을 원천봉쇄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경찰 관계자는 “베트남이나 중국 등지에 점조직을 이루고 있는 마약상들이 국내 보따리상 등과 연계하고 인터넷 택배를 통해 유통하고 있다”며 “조직적이고 소규모로 분산시켜 유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단속에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김미나 이사야 기자 mina@kmib.co.kr
다이어트 하려고 마약까지… 주부·여대생 ‘검은 덫’에
입력 2013-04-25 17:59 수정 2013-04-26 0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