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입력 2013-04-25 17:38
일본의 높으신 양반들이 결국 선을 넘어버렸다. 침략의 정의는 보는 시각마다 다르다고? 일반인도 아니고 나라의 수장인 총리 입에서 이 정도 수위의 말이 나왔다니 불쾌한 정도를 넘어 심난할 지경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일본어를 하고 일본학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내게 해명을 요구하는 난감한 사람들이 꽤 있다. 한마디로 “일본은 도대체 왜 그러냐. 한국이 그렇게 만만하대냐”라는 것인데 내 생각은 이렇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만만한 이웃이 맞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 나름의 정치를 하고 있을 뿐이다. 정치란 것이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고 외교 또한 그런 것인데 그것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사과를 받아야겠다는 생각도 없다. 엎드려 받은 절로 해결될 일인가.
대학원 시절 한 일본인 교환교수의 충고를 잊을 수가 없다. 술김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항의하는 한 학생과 그 교수의 살벌한 논쟁으로 학술회 뒤풀이가 역사논란의 전장이 된 어느 날, 12명의 학생을 논리로 쓰러뜨린 그는 말했다. “분노로 질척대지 말고 논리와 실력을 키워라. 그 힘으로 감히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게 하라. 싸움은 중국처럼 하는 것이다.”
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던 날 장쩌민 주석은 소리 높여 말했다. “100년의 치욕을 씻었다”라고. 100년 동안 갈아온 날선 뚝심으로 영국을 쳐내고 만천하에 중국이라는 이름을 다시 새긴 날의 그 당당함이 한없이 부러웠다. 1910년 힘이 없어 나라를 빼앗겼고, 1945년 해방이 되었으나 온전히 우리 힘으로 이뤄낸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제때,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고 지금까지 68년의 긴 세월을 살아 있는 제국주의 망령들에게 시달려왔다. 폐가를 뒤덮은 담쟁이 덩굴마냥 끝도 없이 달라붙어 휘감고 드는 그들의 해괴한 역사인식. 그것을 잘라 내기엔 우리의 칼날이 너무나 무뎌 보인다.
며칠 전 한 친구가 일본은 정신 차리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많은 댓글 중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는 글이 눈에 걸렸다. 과연 그럴까? 만약에 그 손바닥이 하늘보다 크다면 얘기가 다르지 않을까. 일본이 펼쳐든 손바닥은 우리 생각보다 크고 두텁다. 전 세계 일본 관련 학과에 대한 일본의 민관지원 실적만 봐도 이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과연 우리는 그 손바닥을 쳐내고 진실을 보게 할 칼날이 준비되어 있는가? 마음이 급하다. 분노와 망각을 반복하며 허비할 시간이 없다.
김희성 (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