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맹경환] 과거냐 미래냐, 미국의 선택은?

입력 2013-04-25 17:37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테러가 발생하자 미국은 경악했다. 2001년 9·11 테러의 악몽이 겹쳤다. 테러 용의자들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되뇌었다. 용의자들은 지극히 평범한 이웃이었다. 동생은 유명 사립고를 졸업한 대학 2학년생이었다. 형은 한때 올림픽 챔피언을 꿈꾸던 복서였다. 스물 네 살의 아내와 두 살 난 딸도 있었다. 무엇이 이들을 테러리스트로 만들었는가. 미국인들은 혼돈 속에 빠졌다. “왜 미국 공동체의 일부로 자라고 공부한 두 젊은이가 그런 폭력에 의지했을까”라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자문 속에는 당혹감마저 느껴졌다.

미국 내 무슬림들은 전전긍긍했다. 자칫 이번 사건이 무슬림 무장단체의 소행으로 밝혀질 경우 9·11 테러 때처럼 무슬림들이 비난과 보복의 표적이 될 것이 뻔했다. 미국에 대해 반감을 가진 ‘외로운 백인 늑대’의 소행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두 형제는 체첸 출신의 이민 1.5세대로 이슬람을 신봉하는 무슬림들이었다. 외부 테러 단체와 연계된 흔적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외로운 늑대들은 아니었다.

이제 어느 정도 테러 사건이 정리되면 늘 그래왔듯 상당한 후폭풍이 불 것이다. 첫 번째 타깃은 30년 만에 손질에 들어간 이민법이 아닐까 싶다.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의 오랜 숙원 사업이었던 이민법 개혁은 그동안 공화당에 발목이 잡혀 번번이 실패했다. 지난 대선 라티노들에게 한방 얻어맞았던 공화당은 이민법 개정에 찬성으로 돌아섰다. 민주·공화 양당의 중진 의원으로 구성된 초당적 8인 위원회의 개혁안의 핵심은 두 가지다. 1100만명에 이르는 미국 내 불법이민자들에게 장기간에 걸쳐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과 외국인 근로자 쿼터 확대 등이다. 보스턴 테러를 계기로 이민법 개혁에 반대해 온 공화당 일부 의원들은 벌써부터 미국에 해를 끼치는 사람들에게 이민법의 혜택을 줄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미국에서 테러와 그에 따른 이민 제한의 역사는 1901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광신적 무정부주의자 레온 촐고츠가 미국의 25대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를 저격한 해다. 촐고츠가 폴란드 출신 부모에게서 태어난 이민 1.5세대라는 점이 문제였다. 대통령직을 승계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의회에 무정부주의자와 그 밖에 국가를 위협하는 사람들의 이민 제한을 요구했고 그 결과 1903년 무정부주의자 배제법과 1918년 이민법이 제정됐다.

1920년대엔 ‘사법 살인’으로 유명한 ‘사코 반제티 사건’이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이민 온 구두수선공 니콜라 사코와 생선장수 바르톨로메오 반제티는 1920년 매사추세츠주 제화공장에서 직원 2명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가난한 이민자라는 이유로 그들에게는 공정한 재판이 주어지지 않았다. 진범의 자백이 있었지만 무시됐고 사형 선고 후 4개월 만에 전기의자에서 생을 마감해야만 했다. 사건 이후 당연히 미국의 이민자는 급감했다.

오늘의 미국을 만든 힘의 원천은 이민자들을 하나로 묶는 다원성이었다. 미국은 국적이나 출생지가 아니라 ‘시민권’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돼 있다. 하지만 서서히 미국은 힘을 잃어가고 있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이민의 문턱을 낮추자는 압력 단체까지 만들었다. 저커버그는 미국 대학원을 졸업한 엔지니어들의 57%가 이민자들이고 이민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들은 모두 떠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미국은 과거로 돌아갈 것인가, 미래로 전진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다.

맹경환 국제부 차장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