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만난 시편들
입력 2013-04-25 17:28
김용택 시집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
섬진강 시인 김용택(65·사진)의 신작 시집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창비)은 얼핏 제목만으로는 사랑이나 연애를 노래한 것 같지만 실은 시대의 아픔에 대한 깊은 사유를 보여준다.
“내 입술이 식었다./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 내가 사라진 너의 텅 빈 눈동자를/ 내 손등을 떠난 너의 손길을/ 다시 데려올 수 없다// (중략)// 자라다 만/ 철없는 시대적 응석이 나는 싫다./ 이별을 모르니 사랑을 알 리 없다./ 보수(補修)와 수선(修繕)은 보수(保守)를 낳고/ 철없는 아집과 미숙은 타락한 수구가 된다.”(‘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 부분)
‘철없는 시대적 응석’이나 ‘아집과 미숙은 타락한 수구’라는 구절의 함의는 우리 시대 보수화 경향을 일컫는 것으로 들린다. 시대를 사랑하고 싶어도 시대가 등을 돌렸으니 시인의 마음도 떠나고 만다. 그 애절한 심정을 시인은 시 말미에 “돌아앉아버린 식은 사랑의 얼굴을 보았기에/ 나는 더 나아가지 않으련다”라고 이어붙이고 있다. 정녕 시인이 본 시대의 얼굴이란 어떤 것일까.
“서정의 철조망을 넘어간 시들이/ 도시의 뒷골목에서/ 기아에 허덕인다. 피를 다 흘리면 기계가 될까./ 총알처럼, 쉬면 죽는다./ 그것을 알기에/ 자본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굴러갈 뿐, 숨 쉴 틈이 없다”(‘바퀴들은 쉬지 않는다’ 부분)
시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돌리고 있는 자본의 바퀴에 대해 말하고 있는 듯하다. 난해하다고 해서 다 심오한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 시대, 누구보다도 명징한 서정으로 필명이 높은 김용택의 시가 다소 어려워진 데는 곡절이 있을 것이다. “이 저녁/ 지금 이렇게 아내가 밥 짓는 마을로 돌아가는 길, 나는/ 아무런 까닭 없이/ 남은 생과 하물며/ 지나온 삶과 그 어떤 것들에 대한/ 두려움도 비밀도 없어졌다/ (중략)/ 모든 시간들이 훌쩍 지나가버린 나의 사랑이 이렇게/ 외롭지 않게 되었다.”(‘이 하찮은 가치’ 부분)
김용택의 시는 자본 앞에서 능욕당하는 치욕의 시대에서 도피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시대와 맞서기 위해 좀 어려워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물러서는 시가 아니라 나아가는 시는 저항이 있기 마련이다. 시대뿐만 아니라 늙어가는 것에 대한 저항, 사라지는 것에 대한 저항의 항체가 그의 시를 다소 난해하게 만들었을지라도 예순 중반에 접어든 시인이 새로운 시적 갱신에 성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시집의 가치는 각별하다고 할 것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