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장군 전봉준 체포돼 한양 압송… 마지막 119일 기록
입력 2013-04-25 17:28
한승원 소설 ‘겨울잠, 봄 꿈’
소설가 한승원(74·사진)의 장편소설 ‘겨울잠, 봄꿈’(비채)은 1894년 갑오년 4월, 농민군을 이끌고 전주성을 점령했다가 그해 12월 체포돼 한양으로 압송되어가는 민중 지도자 전봉준(1855∼1895)의 마지막 119일에 관한 기록이다. “전봉준은 천장의 서까래에 어린 어둠을 쳐다보았다. 어둠이 불안정하게 수런거리고 있었다. 나는 이토의 말대로, 살아서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되어 조선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당장 혀를 물어 끊고 죽어야 하는 것일까.”(7쪽)
소설 첫 페이지부터 전봉준은 이미 패군의 수장이다. 오척일촌(약 155㎝)의 키에 아흔 근(54㎏)의 단신인 전봉준은 옛 부하 김경천의 배신으로 꼼짝없이 일본군에게 넘겨진다. 몽둥이로 맞아 다리가 부러지고 몸이 뒤틀린 전봉준에게 십만 대군을 이끌며 총알도 피한다는 영웅의 모습은 없다. 오히려 귓전에서 “일본에 협력한 다음 미국 유학을 다녀와 조선의 새로운 지도자가 되라”는 달콤한 속삭임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전봉준은 당장 자결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한양에 닿아서 최후의 말을 하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사람들에게 다 하고 죽어야 한다. 우리는 왜 봉기했으며 우리의 주장과 꿈은 무엇인가.”(58쪽)
전봉준은 살아야 했다. 종로 네거리에서 목이 잘려 장대 꼭대기에 걸릴 때까지, 뜨거운 피로 마지막 말을 대신할 때까지 살고자 했다. “가보세, 가보세, 갑오년에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하다가는 병신 되어 못 가네.” 전봉준이 전주성에 입성하던 날 농민군은 이렇게 노래를 부르고 세상을 바꿔보자고 했다.
2014년이면 다시 갑오년이다. 하지만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120년 전 전봉준의 마지막 모습을 치열하게 재구성한 한승원은 “요즘 독자들의 단조로운 호흡을 생각하며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커트 한 커트의 짧은 영상들을 노둣돌처럼 점점이 놓아갔다”고 말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