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임항] 최소존속 개체군
입력 2013-04-25 17:23
영화 ‘황산벌’에서 김유신은 계백과의 한판 승부를 앞둔 시점에서 이렇게 읊조린다,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게 아니고, 살아남은 놈이 강한 거야.” 경쟁력이 강하다고 해서 최종적 승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약자라도 조직의 힘과 다수의 협력, 때로는 적과의 동맹을 통해 승리에 오히려 더 쉽게 다가간다. 이 경구는 요즘 시장경쟁 현장이나 사내(社內)정치에도 더러 적용되지만, 적자생존의 생태계를 설명할 때 가장 적절하다. 즉 힘이 센 포식자인 사자보다 초식동물인 얼룩말이 자손을 더 잘 퍼뜨리고 멸종의 위협으로부터 더 안전하다.
또한 ‘경쟁배타의 원리’에 따르면 동일한 지역에서 동일한 생태적 지위를 지니는 생물 종, 예컨대 사자와 호랑이 등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이들 종 가운데 그 생태계에서 살아남는 종 역시 1대 1 싸움에 더 능한 종이라기보다는 무리의 협력이나 다른 종과의 공생 등을 통해 환경에 잘 적응한 종이다. 즉 지금 지구상의 모든 종은 생태계 안에서 독특한 지위를 갖고 다른 종의 생존에 나름대로 기여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생물종의 멸종을 막거나 멸종위기 종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최소존속개체군’을 달성하거나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이는 어떤 종이 자연 상태에서 대대로 존속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개체 수를 말한다. 새끼의 초기 사망률, 근친교배로 인한 유전적 다양성 상실 등을 극복하고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서는 개체 수가 많아야 한다.
환경부가 백두대간을 따라 멸종위기 1급인 산양 복원작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산양 100여 마리가 살고 있는 울진·삼척지역에서는 겨울철에 산양이 무더기로 죽고 있다. 2010년 폭설 후에는 25마리가 사체로 발견되기도 했다. 녹색연합이 그제 발표한 지리정보시스템 분석 결과 에 따르면 삼척 응봉산에서 산양의 집단서식지 대부분이 도로와 1㎞이상 떨어져 있었고, 등산로 200m 이내엔 접근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등산객과 도로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대부분 등산로인 계곡까지 물을 마시러 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이들 서식지는 국립공원이 아니어서 종복원사업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탓도 크다.
반달가슴곰이나 산양 같은 크기의 포유동물의 최소존속개체군은 50마리로 추산된다. 삼척·울진지역의 산양은 최소존속개체군 이하로 개체수가 감소할지도 모른다. 반달가슴곰에게는 관리 인력과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반면 산양에게는 그렇지 않다. 산양에게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