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고용노동부 언제쯤 이름값 할 텐가

입력 2013-04-25 17:23


“정년 연장 후속 조치 마련 에 최선 다해야…계속 업무 해태할 거면 간판 내려라”

지난 대선에서 유력한 여야 후보가 정년 연장을 공약했다. 은퇴 시기가 다가오는 베이비부머들(1955∼63년생)은 희망을 걸었다. 누가 되더라도 이른 시일 안에 정년 연장이 실현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29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2017년부터 정년을 60세로 의무화하겠다”고 보고했을 때 베이비부머들은 큰 울분을 느꼈을 것이다. 평균 은퇴 연령이 53세임을 감안할 때 대부분의 베이비부머들이 회사를 떠난 뒤 정년 연장을 도입하겠다니 이만한 실기(失期)도 없다.

이미 국회의원들이 지난해 7, 8월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연장하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안 여러 건을 발의한 상태였다. 시행일을 올해 또는 법률 공포일로 했거나, 내년부터 사업장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내용이다. 올해부터 2017년까지는 정년을 60세로 하되 그후 5년마다 한 살씩 올리고 2033년부터 64세로 하는 개정안도 발의됐다.

노동부도 지난해 10월 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안을 국회에 냈다. 고령자와 준고령자 명칭을 장년으로 변경하는 내용이다. 정작 중요한 정년 연장 문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노동부가 의원들의 입법 추진 내용과 과정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에게 의원들이 발의한 개정안보다 한참 뒤처지는 방안을 보고했다. 뒷짐이나 지고 국회 처리과정을 지켜보자는 심산이 아니고서는 이럴 수가 없다. 박 대통령이 전후사정을 알았더라면 노동부의 뒷북 행정에 격노하지 않았을까 싶다.

노동부가 일처리를 미루는 사이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4일 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근로자 정년을 60세로 하고 사업장 규모에 따라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해 2017년까지 전 사업장으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기업 여건에 따라 임금체계를 개편할 수 있도록 하고 사업주가 근로자를 60세 이전에 내보내면 부당해고로 간주하게 했다.

모처럼 밥값을 한 의원들에게 국민의 찬사가 쏟아졌다. 노동부가 의원들보다 먼저 준비하고 입법 과정을 주도했다면 새 정부와 박 대통령의 지지도를 올릴 수 있는 사안이었다.

이 시점에서 지난해 2월 노동부 장관과 논설위원들과의 간담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이채필 장관은 노동 현안들을 설명했지만 정년 연장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배포해준 자료에는 “정년 연장, 재고용 기간에 따라 사업주를 차등 지원한다”는 내용만 짤막하게 들어 있었다. 기자가 정년 연장 문제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메모를 토대로 그의 발언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정년 연장은 인위적으로 하기보다는 사업장이 주도해야 한다. 정부는 그런 사업장을 정책으로 뒷받침하면 된다. 청년을 뽑지 않아 어떤 회사에서는 막내가 40대라고 한다. 연공서열에 따른 임금체계 때문에 퇴사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낙하산 인사가 아니라 노동부 공무원 출신 장관이어서 건설적인 대답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답변을 듣고는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노동자의 권리 보호와 일자리 확충 등을 위해 동분서주해야 할 노동부 장관이 아니라 재계 입장에 귀를 기울이는 경제부처 장관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가 정년제를 법으로 금지한 미국, 정년을 65세 이상으로 늘린 선진국들의 사례를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년이 늘어나면 근로자들의 노후가 나아지고,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이 좋아지는 등 순기능이 상당하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재계를 두둔하는 듯한 모습은 노동부 장관의 자질을 의심케 했다.

장관이 바뀌었는데도 노동부가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이면 곤란하다. 노동부는 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후속 조치 마련에 한 치의 소홀함도 보여서는 안 된다. 계속 업무를 해태할 것이라면 간판을 내려야 한다. 모든 부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동관계법 개정을 밀어붙인 과거 노동부 시절을 기억하기 바란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