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공명·악비… 난중일기 속 이순신의 멘토들
입력 2013-04-25 17:43 수정 2013-04-25 22:39
흔들리는 마흔, 이순신을 만나다/박종평/흐름출판
충무공 이순신이 남긴 기록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48세 때부터 54세에 숨을 거두기까지 남긴 ‘난중일기’와 보고서다. 그 기록에 등장하는 이순신의 스승은 대략 15명. 중국 병법가인 손자, 오자, 태공망, 사마양저, 위료자, 곽자의를 비롯해 제갈공명, 장량, 전단, 조충국, 악비, 이목, 이강, 유기, 유성룡 등이 그들이다.
이 가운데 제갈공명, 당나라 장군 곽자의, 송나라 장군 악비는 이순신에 앞서 충무 시호를 받은 사람들이다. 세 사람은 ‘난중일기’에도 등장한다. 이순신은 ‘삼국지’를 읽으면서 제갈공명을 닮고자 했다. 제갈공명이 “피로한 적을 기다려 싸우라”는 ‘손자병법’의 전략을 활용했듯 이순신 역시 먼 길 오느라 지친 일본군을 주요 공격목표로 삼았고 자신의 군대가 피로할 때는 과감하게 전투를 중단시켰다. 제갈공명은 죽음을 앞두고 부하인 양의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마중달이 추격해 오면 내가 만들어놓은 내 목상(木像)을 수레 위에 앉혀 그에게 보여라. 그러면 반드시 후퇴할 것이다.”
1598년 11월 19일 새벽, 아비규환의 전쟁터에서 탄환을 맞은 이순신은 부하들에게 말했다. “싸움이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 저자인 역사비평가 박종평(사진)은 “이순신은 제갈공명을 닮고자 노력했지만 마침내 제갈공명을 넘어선 것이 이 부분”이라며 “제갈공명은 자신의 과업을 완수하지 못하고 병으로 죽었지만 이순신은 자신의 과업, 나라와 백성의 원수를 응징하는 것을 끝까지 다했고 전투 중에 죽었다”고 지적했다.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을 지낸 유성룡도 이순신의 멘토였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에 따르면 유성룡과 이순신, 원균, 허균의 형 허봉은 모두 서울 건천동 출신이다. 특히 유성룡과 이순신은 죽마고우였고 먼저 과거에 급제해 출세한 유성룡은 진흙 속에 숨은 보석인 이순신을 끊임없이 후원했다. 그는 변방의 하급 장교였던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추천했다.
이순신은 ‘난중일기’에 유성룡을 15번이나 언급했다. 두 사람은 서로 소통하면서 정보와 아이디어를 교환했다. 이순신이 진중(陣中)에서 실시한 둔전이나 소금 제조, 시장 활성화 등은 두 사람의 합작품으로 추정된다. 이순신은 유성룡이 중강진에 시장을 열자는 주장을 했던 1593년 섬진강 기슭에 시장을 열었다. 두 사람은 거울을 쳐다보듯 서로에게 배우고 교감했다.
책은 이순신이 정신적으로 의지했던 역사 속 ‘스승’들을 찾아간다. 이순신도 처음부터 영웅은 아니었다. 저자는 “이순신도 젊은 시절 많이 흔들리고, 다혈질이었으며, 다소 늦게 성공한 만큼, 그가 사십대에 어떤 인생의 스승들로부터 단련 받았는지를 엿보는 것은 지금의 독자에게도 귀한 가르침을 준다”고 지적했다. 마침 오는 28일은 이순신 탄생 468주년 기념일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