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안에 지구촌 80억 인구 온라인 연결될 것”

입력 2013-04-25 17:37 수정 2013-04-25 22:38


에릭 슈미트 새로운 디지털 시대/에릭 슈미트·제러드 코언/알키

미국의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은 정보기술(IT)업계의 거물이다. 선 마이크로시스템 최고기술경영자(CTO), 리눅스 업체인 노벨의 대표를 거쳐 2001년 구글에 합류했다. 닷컴 버블이 꺼진 시점이었다. 하지만 그는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발칙한 사고와 통찰력에 감탄해 사업가, 최고기술개발자로서의 수십 년 경험을 기꺼이 쏟아 부었고, 그 결과 신생 IT업체 구글은 이제 글로벌 IT제국으로 성장했다.

슈미트라면 디지털 시대의 미래를 어떻게 그릴까. 당신이 궁금해할 이 질문에 그가 첫 저서를 통해 직접 답을 내놓았다. ‘에릭 슈미트 새로운 디지털 시대’(원제:The New Digital Age)라는 제목을 단 이 책은 구글의 싱크탱크인 ‘구글 아이디어’의 제러드 코언 소장과 함께 썼다.

2009년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를 함께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됐다. 6년 전쟁으로 도심은 폐허가 됐고 물과 전기조차 부족했지만 사람들이 필수품처럼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는 게 아닌가. 연결성. 이는 먹고 마시는 문제보다 네트워킹을 더 중요한 삶의 가치로 여기는 현장을 세계 곳곳에서 목격한 슈미트가 통찰한 시대의 키워드다.

슈미트는 “2020년 안에 지구촌 80억 인구가 온라인으로 서로 연결될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그것이 몰고 올 새로운 디지털 시대를 전망한다. 흔히 미래예측서가 새로운 기술로 우리 삶이 얼마나 편리해질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달리, 이 책은 전면적 온라인화가 가져올 변화를 권력관계 측면에서 통찰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개인의 삶에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최대의 변화는 온라인 데이터의 영구화다. 인터넷에 오른 개인 정보는 누군가가 퍼 나른 탓에 없어지지 않는다. 과거에 쓴 글 하나로 인사청문회에서 곤욕을 치르는 장·차관 후보자들의 일화는 대한민국에서도 벌써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조만간 부모는 자녀에게 성교육보다 먼저 온라인에서의 사생활 보호 대책에 이야기해주어야 할 것이다.

온라인상의 평판에 대응하는 이른바 ‘평판 기업’도 넘쳐날 것이다. 이미 미국의 레퓨테이션(Reputation.com) 같은 기업은 인터넷에서 원하지 않는 콘텐츠를 제거하거나 희석시키기 위해 광범위한 기술을 활용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월가의 몇몇 은행들은 온라인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런 평판 기업과 계약을 맺어 매달 1만 달러의 서비스료를 지불한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 평판 보험도 등장할 것이다. 인터넷상의 절도와 해킹, 사기성 비방, 오용 등에 맞서 당신의 온라인 신원을 보호해주기 위한 것이다. 미성년자 시절에 올린 정보는 봉인하자는 법안이 의회에서 발의될 수도 있을 것이다.

슈미트는 언론의 미래도 전망한다.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주류 언론에 눈길을 주지 않는 독자도 있겠지만, 무분별한 속보가 판을 치게 됨에 따라 주류 언론의 필터링 기능에 대한 의존도도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한다.

자유 언론이 부재한 독재국가에서는 익명의 뉴스 수집 시스템을 이용한 새로운 언론 형태가 등장해 독재자를 불편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콩고 동부에서 활동하는 군벌들이 국제사법재판소로 불려 나올 가능성은 없지만, 신원 확인이 불가능한 기자들에게 일거수일투족이 포착돼 온라인 세계에 퍼뜨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강대국들의 사이버 전쟁도 치열해질 것이다. 고정간첩, 전단살포, 첩보기술은 이제 바이러스, 디지털 스파이웨어 같은 도구로 대체될 뿐이다. 냉전시대의 또 다른 특징인 대리전쟁도 재현될 것이다. 미국은 마약범죄조직에 전자공격을 가할 수 있도록 남미 국가들에게 은밀히 자금을 지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이버 공격의 주체는 밝혀내기 힘들다는 점에서 실책과 오류의 가능성이 적지 않다. 슈미트는 사이버 공격 주체를 둘러싼 문제가 어떻게 국가적 차원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느냐를 보여주는 사례로 2009년 디도스 공격을 꼽았다.

그는 “2009년 세 차례 디도스 공격으로 한국과 미국의 주요 정부 웹사이트들의 기능이 마비됐다”며 “이를 조사한 보안전문가들은 공격에 동원된 좀비 PC들의 네트워크인 봇넷이 북한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하는 한국어 등 여러 단서를 찾아냈다”고 당시 상황을 소개했다. 이어 “한국 정부는 곧바로 공격 주체로 북한을 지목했고, 미국 공화당은 오바마 정부에 보복을 촉구했다”며 “하지만 1년 뒤 정보 분석가들은 디도스 공격을 북한이나 어떤 특정국가가 저질렀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아무런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고 지적했다.

공격을 선동한 자가 자신의 흔적을 감춘다면 국가는 과연 어떻게 복수할 수 있을까? 슈미트는 전 세계 정책 당국자들이 이런 질문에 서둘러 답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지난 1월 북한을 방문했던 슈미트는 책에서 북한을 몇 차례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가상세계에서 다자간 공동정책이 대두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는데, 북한과 같은 (국제사회로부터 버림받은) 국가들이 검열과 감시에 대한 전략과 기술을 공유하기 위해 독재국 사이버 연합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처럼 글로벌 IT업계 대표 리더답게 슈미트가 던지는 디지털 미래에 대한 통찰은 묵직하다. 그러면서도 상상이 때로는 기발하면서도 예리해 읽는 즐거움을 준다. 책은 한국과 미국 영국에서 동시 발간됐다. 이진원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