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봉된 한·미 원자력협정 전향적으로 개정돼야
입력 2013-04-24 18:53
한·미 양국이 내년 3월 효력이 끝나는 원자력협정을 2년 연장하고, 추가로 개정 협상을 벌이기로 했다. 1974년 발효돼 40년 가까이 지속된 협정을 제때 개정하지 못하고 만료기한을 늦추는 식으로 미봉한 것이다.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2010년 10월부터 협상을 벌여온 양국은 지난 16∼18일 열린 제6차 본협상에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동안 우리 정부의 협상준비가 부실했거나 미국 정부의 핵 비확산 입장이 지나치게 강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외교 당국은 “최근 변화된 미국의 입장을 감안할 때 진전할 수 있는 토대도 있고 상당한 진전도 있다”고 협상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앞으로 2년 동안 진행될 분기별 정례 협상을 통해 양측이 타협점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원전이 1기도 없던 시절에 체결된 한·미 원자력협정은 23기의 원전을 가진 세계 5위 원전대국이자 수출국으로 성장한 우리의 현 위상을 반영해 전진적으로 개정돼야 마땅하다. 북한의 집요한 핵 무장 기도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여러 차례 비핵화 원칙을 천명했는데도 비확산 원칙만 내세우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국내 원전 수조에 저장된 폐연료봉은 1500만개가 넘고, 연간 700t의 폐기물이 생겨나 2024년이면 포화상태에 이른다.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면 폐기물 부피를 90% 이상 줄일 수 있고 원전연료로 재사용할 수 있는데 이를 원천봉쇄 당하는 현실은 납득하기 어렵다. 또 원전 원료 수입에 매년 9000억원이 들어가는 상황에서 우라늄 저농축마저 가로막고 있는 현행 협정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 정부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최근 북한 핵 문제가 고조되면서 남한의 핵무장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미국 조야에 경계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남한에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나 우라늄 저농축을 허용하는 게 북한 핵 문제 해결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하지만 남한과 북한은 핵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이 본질적으로 다르다. 또 경제와 환경 등의 측면을 고려해 필요한 최소한의 핵권리를 남한에 허용하는 문제는 북한의 핵무장 해제 문제와 분리돼 다뤄져야 한다.
미국 정부는 60년을 맞은 한·미 동맹의 큰 틀에서 이 문제를 전향적으로 풀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인 일본에는 1988년 협정을 개정하면서 재처리와 농축을 허용해 놓고 한국만 안 된다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 핵 비확산 원칙에는 우리 정부도 뜻을 같이하는 만큼 미국의 철저한 감시와 관리를 통해 평화적 핵이용의 권리를 허용하는 기술적인 절충안이라도 마련하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