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전석운] 보스턴 테러와 한국 학교폭력
입력 2013-04-24 18:57 수정 2013-04-24 19:54
보스턴 마라톤 테러 사건을 보면서 나는 우리나라의 학교폭력 문제를 떠올렸다. 그 이유는 첫째 보스턴 테러범들이 알카에다 조직원이 아니라 미국 공립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 학생이거나 학업중도탈락자였기 때문이다. 동생 조하르 차르나예프(19)는 매사추세츠주립대 다트머스 캠퍼스 2학년에 재학 중이다. 그의 아버지 표현을 빌리면 ‘장래가 촉망되는 의대생’이다. 경찰에 저항하다 숨진 형 타메를란 차르나예프(26)는 대학에 진학했지만 등록금이 없어 중도에 포기했다.
둘째는 체제 적응에 실패한 이민자들의 분노와 좌절이다. 체첸출신의 타메를란은 2004년 복싱 대회에 출전할 당시 지역 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미국을 좋아한다. 미국에는 일자리가 많다”고 말하는 등 자신감이 넘쳤으나 불과 몇 년 후 자신의 웹사이트에 “5년간 미국인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적을 만큼 분노를 삭이는 외톨이로 전락했다. 한때 미국 국가대표 권투선수를 꿈 꿨지만 허리부상으로 운동을 그만뒀다. 조하르도 대학 진학 후에는 성적 부진으로 고민하는 등 학교생활이 순탄치 않았다. 그는 검거 직후 첫 조사에서 미국의 이라크 전쟁 등을 테러의 이유로 거론했지만 내면에는 분노와 좌절이 가득해보였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이들 형제의 삼촌 루슬란 차르나예프도 비슷한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조카들이 용의자로 밝혀진 직후 몰려든 기자들에게 “인생낙오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화풀이한 것”이라며 “자수를 하고 용서를 구하라”고 고함을 질렀다.
분노·좌절은 낮은 자존감 때문
우리나라의 많은 학생들도 학교 부적응에 시달리고 있다. 경제적 이유 등으로 학업을 중단하는 초·중·고 학생들이 해마다 5만∼7만명에 달한다. 성적압박에 고통을 호소하거나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부지기수다. 중간고사나 모의고사가 끝나고 나면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또래들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학생들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보스턴 테러범들의 부적응은 개인편차가 커서 미국사회에서 일반화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학생들의 부적응은 제도와 환경 탓이 크다.
분노와 좌절은 우리나라 10대들도 앓고 있는 병리현상이다. 특히 학교 부적응아들이나 학교폭력 가해자들은 자존감이 낮아서 사소한 오해에도 주먹을 휘두르거나 또래를 괴롭히면서 분노를 표출한다. 과거 폭력 피해 경험이 폭력 가해자로 만들기도 한다. 갈수록 늘어나는 다문화가정과 그 자녀들은 여전히 한국 사회와 학교에 적응하는 데 애를 먹는다. 그들의 마음속에 분노와 좌절이 쌓일 것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잠재력 인정하고 칭찬해야
FBI는 2년 전 러시아의 요청으로 타메를란을 조사하고도 이번 테러를 막지 못한 책임론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오래전부터 드러난 학교폭력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우리나라 교육당국에도 마땅히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교육부는 학교폭력이 불거질 때마다 대책을 내놓았지만 원인 규명을 위한 조사나 재발방지를 위한 예방교육은 형식에 그치고 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 지난 22일 내놓은 전국학교폭력실태조사에도 잘 드러나 있다.
학교폭력의 원인은 다양하다. 과도한 경쟁교육과 낮은 공동체 의식, 가정해체와 경제적 위기 등 복합적이다. 그러나 학교 안에서 추구해야 할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는 게 학생상담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것은 학생들의 다양한 잠재력을 인정해주고 구체적으로 칭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관찰하고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석운 정책기획부장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