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편법행위 꼼짝마”… 공정위, 규제조항 만든다
입력 2013-04-24 18:49 수정 2013-04-24 10:27
삼성SDS는 1999년 230억원 상당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자녀인 이재용·부진·서현씨에게 헐값 매각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부당지원행위에 해당한다며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58억원을 부과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회장 자녀들이 관련 산업과 연관이 없다는 이유로 삼성에 면죄부를 줬다.(총수일가 개인 지원)
현대자동차 정의선 부회장 등 총수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이노션은 현대차 광고물량을 도맡아왔다. 공정위는 광고대행업무의 정상가격 산정이 어려워 부당성 입증을 포기했다.(일감몰아주기)
이 같은 대기업의 편법행위는 지금까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관련 법 규정이 없어서다. 하지만 공정위 계획대로 공정거래법 23조에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에 대한 구체적 조항이 만들어지면 사정은 달라진다. 공정위 한철수 사무총장은 24일 “현행 규정은 대기업 총수일가가 불공정행위를 저질러도 관련 산업의 경쟁질서가 무너졌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새 규정이 마련되면 해당 시장에서의 공정거래가 저해됐는지와 무관하게 처벌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다 공정위는 부당 내부거래를 금지한 기존 공정거래법 23조상 위법성 성립요건도 ‘현저히 유리한 조건’에서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완화키로 했다. 다른 사업자와 직접 거래가 가능한 데도 중간에 특수관계인이나 계열사를 억지로 끼워 넣어 수수료를 취하는 이른바 ‘통행세’ 관행도 부당 내부거래 유형에 추가할 예정이다.
공정위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그동안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정부의 명확한 입장이 드러난 것이다. 공정위는 6월 말까지 법 개정을 끝내고, 12월 시행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갈 길은 아직 멀다. 개정안은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공정위가 재계를 의식해 개정안에서 ‘총수일가 지분 30%룰’을 삭제하고 ‘공정위가 거래의 부당성을 입증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는 조문을 추가했다. 사실상 한 발 물러선 셈이다. 30%룰을 적용할 경우 삼성에버랜드, 현대글로비스 등 22개 그룹, 112개사가 규제강화 대상에 포함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룰이 무산되면서 부당거래에 관여한 기업은 처벌할 수 있어도 총수일가에 대한 처벌은 부당거래 관여를 입증할 명확한 증거가 필요해졌다.
국회 정무위 관계자는 “언제 법안소위가 재개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충분한 검증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6월 통과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백상진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