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사이트 만들어 청소년 유인… FBI ‘함정수사’

입력 2013-04-24 17:52

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

나흘 전 발생한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마라톤 테러사건의 용의자 형제 추격에 열을 올려야 할 시간에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은 엉뚱하게도 압델라 아흐마드 투니지(18)란 소년을 붙잡았다. 무장 테러단체를 도우려 한 혐의였다.

24일 AP통신에 따르면 투니지는 전과도 없고 테러 집단과의 연계도 없었으며, 하물며 절도나 강도·살인 같은 강력범죄를 저지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체포됐고, 유죄가 확정되면 최고 15년형까지 받을 수 있는 혐의를 받아 기소됐다.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을까.

알카에다와 관련도 없는 그가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은 FBI 때문이었다. FBI는 미국에 자생하고 있을지 모르는 예비 범죄자들을 잡기 위해 사이트를 만들었다. 사이트엔 ‘사자 같은 형제들이여 어서 오라. 참된 이슬람의 기치 아래 싸우자’는 문구가 붙었다. 테러조직을 가장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동조하는 사람들을 미리 발견하기 위한 함정이었다.

호기심어린 청소년들이 몰려왔다. 대개는 사이트를 둘러보는 수준이었지만, 덴버 인근 오로라 태생의 한 젊은이는 조직에 가입하려 했다가 적발됐다. 투니지는 다른 이들보다 적극적이어서 지하드(성전)의 전사가 돼 시리아 내전에 합류하려 했고 터키행 항공기에 탑승하기 위해 공항에 갔다가 붙잡혔다. 투니지는 홈페이지 운영진이 알카에다와 연계된 테러조직인 줄 알고 여러 차례 메일을 주고받았지만 사실은 FBI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속았던 것이다.

FBI의 수사 방식을 놓고 찬반이 엇갈린다. 전 연방검사 필 터너는 테러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청소년들이 호기심에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범죄자가 되는 길을 접한다고 비판한다. 그는 “진짜 테러리스트들은 이런 웹사이트가 필요 없다. 그들은 진짜 루트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보안전문가 마이크 페이젤은 “테러가 발생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보라. 이는 매우 유효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함정수사 방식으로 보스턴 마라톤 테러 같은 대형사건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함정수사에는 비용과 시간이 덜 들어간다는 이점이 있다. 지난 15일 발생한 보스턴 마라톤 테러사건의 범인 차르나예프 형제가 대형 테러조직과는 별다른 연계가 없는 ‘자생적 테러리스트’일 가능성이 높게 나타나면서 곳곳에 숨어 있을지 모를 예비 범죄군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도 함정수사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인디아 타임스는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등 중동지역 테러단체들이 인터넷을 통한 암호해독 능력이 뛰어난 젊은이들을 꾀어 모집한 뒤 훈련시키는 추세라며 이런 현상은 2008년 인도 뭄바이 테러사건 이후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독일 신문 슈피겔은 차르나예프 형제가 이처럼 새로운 테러 유형을 대표한다고 분석했다.

미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형제 중 생존한 동생 조하르(19)는 병상에서 “형이 인터넷을 보고 테러를 계획했고 배후에 테러조직은 없다”고 진술했다고 CNN 등이 전했다. 조하르는 범행의 원인으로 “미국이 일으킨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차르나예프 형제의 어머니는 조하르의 형 타메를란(26)이 사망 직전 전화를 걸어 “엄마 사랑해요”라는 말을 남겼다고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