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이중잣대
입력 2013-04-24 18:51
어떤 현상이나 문제를 판단하는 기준을 잣대라고 한다. 잣대가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려면 한결같아야 한다. 상황에 따라 변하면 공평무사한 잣대가 아니다. 잣대의 대척점을 이중잣대라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대표적인 이중잣대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표현일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인터넷에서 로맨스와 불륜을 치면 파생어가 죽 나온다. ‘쿨하면 로맨스, 더티하면 불륜’ ‘남이 모르면 로맨스, 남이 알면 불륜’…. 소개하기에 민망한 내용들도 있다.
금융회사에 지원한 감사원 퇴직자 전원이 최근 3년간 재취업 심사를 통과한 걸 두고 말들이 많다. 이들이 재취업하면 감사원과 해당 금융회사 사이에 유착 고리가 생길 공산이 적지 않다. 감사원은 문제없다고 하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을 국민이 얼마나 될까. 오히려 감사원이 이중잣대를 썼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러고도 피감기관의 위법·탈법을 제대로 감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에는 남북한 통수권자를 비교할 때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이들이 있다.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기집권은 강도 높게 비난하면서도 북한 주민을 고난의 늪으로 몰아넣는 김일성 일가의 3대 권력 세습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종북세력이 그들이다. 이때 적용된 이중잣대가 로맨스와 불륜임은 말할 것도 없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은 주적의 침략의지를 억제시키고, 만약 침략하면 섬멸하기 위한 연례 훈련이다. 북한이 도발하지 않는 한 한·미가 먼저 공격할 리가 없다. 이것이 양국 정부의 불문율이다. 그럼에도 북한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침략을 위한 망동이라고 호도한다. 군사평론가들은 북한이 이상한 잣대를 휘두른다고 지적한다.
이중잣대 논란은 정치판의 단골 메뉴다. 총리·장관 후보자의 흠결을 비판하던 야당 의원이 여당 의원이 되면 ‘뭘 그런 걸 문제 삼느냐’고 반응할 때 이런 논란이 생긴다. 경찰 간부가 공개토론회에서 경찰 내사단계까지 검찰 지휘를 받게 한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우리가 내사하면 불륜이고, 검찰이 하면 로맨스”냐고 반발한 적도 있다.
최근 미국 한 지방법원 판사의 판결이 외신을 탔다. 이 판사는 법정에서 휴대전화 벨소리를 울린 사람에게 무조건 벌금형을 선고했다. 자신이 똑같은 실수를 하자 가차 없이 그간 선고해온 최고액의 벌금형을 자신에게 내렸다. 이중잣대가 난무하는 세태에 원칙을 지켰다. 그래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으리라.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