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의승 (9) 사이공서 만난 미군 대위 “저 철모가 날 두번 살려”

입력 2013-04-24 17:13


월남에서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이 존스라는 이름의 미 육군대위였다. 그는 최전방 수색대에서 근무하던 중 미군 정책에 따라 며칠간 사이공에 와서 휴식을 취하다 같은 호텔 룸메이트였던 나와 만났다. 당시 월남전에서 최전방 수색대원들은 그야말로 목숨이 휴지와 같은 처지였다. 언제, 어디서 죽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월남전에서 미군은 ‘R&R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R&R’은 ‘Rest and Relaxation’의 약어로 전방 수색대원들에게 쉼의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었다. 존스 대위는 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사이공에 온 것이다.

어느 날 퇴근 후에 사이공의 호텔 방에 들어가니 미군 한 명이 자고 있었다. 존스 대위였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존스 대위는 자고 있었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저럴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일 째 저녁에 들어가 보니 깨어 있었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나와 비슷한 연배로 미국의 명문 컬럼비아 대학 역사학과를 나온 엘리트였다. 나와 이야기하던 도중 존스 대위는 책상 위에 철모를 ‘신주단지 모시듯’ 정성스레 올려놓았다. 그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며칠 후에 그 이유를 물어 보았다. 사연이 있었다. “저 철모가 내 생명을 지켜 줬습니다. 두 번이나 총알을 정통으로 맞았습니다. 즉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저 철모가 나를 살려줬습니다. 두 번 다 총알이 철모에 맞았습니다.”

그는 수색대원 중 절반은 죽어서 나온다고 말했다. “정말로 생명은 소모품 정도로밖에 취급되지 않습니다. 전쟁이란 게 그렇습니다. 그래서 ‘좋은 전쟁도, 나쁜 평화도 없다’는 말이 실감이 됩니다.” 존스 대위의 말을 통해서 전쟁의 참상이 더 실감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존스 대위의 아버지가 미 육군 중장으로 당시 미 CIA의 부국장이란 사실이었다. 그는 외아들이었다. 그렇게 실력자 아버지를 두었지만 그는 월남에 와서, 더구나 수색대에서 생명을 걸고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잠시 쉬지만 다시 수색대로 전방에 가야 한다.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아버지가 그렇게 유력한 분이라면 순환 보직 규정에 따라 후방에서 근무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존스 대위는 웃으면서 “아버지를 잘 못 둬서 그렇게 못합니다. 아버지는 저더러 계속 수색대에 있으라고 했습니다. 사실 저도 완전히 아버지 의견에 동의했습니다. 그게 올바른 자세이니까요.”

정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무엇인지를 존스 대위와 그 아버지는 확실히 보여줬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 우리나라는 멀어도 한참 멀었구나. 나도 아직 멀었다’란 생각이 들었다. 미국이란 나라가 참으로 위대하다는 생각을 했다. ‘존스 대위와 철모’는 그렇게 내 마음 속에 강하게 각인됐다. 지금도 한국에서 일어나는 지도자들의 문제를 접할 때마다 핏발 선 눈으로 내게 이야기하던 존스 대위가 눈에 선하다. 아무튼 월남에서의 경험이 나의 사고와 삶의 지평을 넓혀줬다.

크리스천들에게도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에게는 맡겨진 임무가 있다. 군대로 비유하자면 하나님은 우리의 보스다. 군대에서는 상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 그래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인생의 보스이신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 그 인생 상관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그분이 시킨 일을 해야 한다. 자신의 환경과 조건을 뛰어넘는 순종을 하고, 거기에 걸맞은 결과를 얻어야 한다. 하나님이 시킨 일을 그대로 하는 것, 그것이 성공이다.

정리=이태형 선임기자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