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代 복수혈전, 40代 복면달호… “영화의 꿈, 50대에 재도전”
입력 2013-04-24 17:26
5월 1일 개봉 ‘전국노래자랑’ 제작한 방송인 이경규
인터뷰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타고난 유머 감각 때문이랄까. 개그맨 출신 방송인 이경규(53)를 지난 22일 서울 동교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5월 1일 개봉하는 영화 ‘전국노래자랑’(감독 이종필)의 제작자인 그의 홍보성 멘트가 폭소를 자아냈다. “송해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전국노래자랑’ 관람자가 7세부터 100세까지 1000만명이 넘는대요. 그러니 영화는 잘하면 3000만명은 본다는 거예요. 하하.”
방송을 해오면서도 마음속에 늘 영화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그는 30대 초반에 ‘복수혈전’(1992)의 주연과 연출을 맡았고, 40대에 ‘복면달호’(2007)를 제작했다. 그리고 50대에 ‘전국노래자랑’을 만들었다. 전작 두 편은 흥행에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지만 돌아보면 가슴이 쓰리다. 그럼에도 다시 영화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어릴 때 극장에서 밤을 샐 정도로 영화광이었어요. 대학(동국대 연극영화학과) 때도 그렇지만 영화는 저의 꿈이자 운명이에요. 영화는 음악 미술 무용 등을 아우르는 종합예술이잖아요.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하는 거죠. 송해 선생님 말씀대로 ‘3000만의 기적’이 일어난다면 좋겠지만 흥행에 실패하더라도 ‘후지게 만들었다’ ‘이것 만들려고 그 난리를 쳤나’는 얘기는 듣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개그맨으로 성공하면 반드시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다짐한 그는 ‘복수혈전’ 이후 절치부심하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다시 발동이 걸려 ‘인앤인픽쳐스’라는 영화사를 차렸다. “인앤인은 인(人)과 인(忍)을 말하는데, 사람냄새 나는 아날로그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인내심을 갖자, 그래서 고른 소재가 아날로그적이고 33년간 방송된 국내 최장수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입니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시나리오 기획과 제작자 역할에만 몰두했다. 촬영은 감독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현장에는 일절 개입하지 않았다. “눈물나는 가족 이야기를 노래와 함께 들려주려고 시나리오를 여러 번 고쳤어요. 연출도 직접 하지 그랬냐는 얘기도 있었지만 내가 하면 안 돼요. 공부를 많이 한 감독이 많은데, 감각으로 하기에는 요즘 시대가 많이 달라졌어요. 앞으로 좀 더 공부해서 해야죠.”
방송계에서 잘나가는 그에게도 고민은 있었을 터. “120분짜리 방송을 위해 300분을 녹화해요. 180분을 버리는 거죠. 똑같은 걸 반복하다 보면 정신이 아득해져요. 그래서 공황장애까지 왔어요.” 그는 ‘아침식사 후 복용’이라고 쓰인 약봉지를 보여주며 “매일 약과 함께 산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국노래자랑’이 빵 터져서 내 병도 낫고 사람들도 행복하게 해줬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23일 시사회를 통해 선보인 ‘전국노래자랑’은 ‘7번방의 선물’처럼 ‘코믹+눈물+가족’이라는 흥행 공식을 잘 살린 느낌이었다. 가수의 꿈을 접고 낮에는 아내의 미용실 조수로, 밤에는 대리운전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봉남(김인권)이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하기까지 겪게 되는 에피소드가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다소 오버하면서도 밉지 않은 캐릭터의 김인권 연기는 물이 오를 대로 올랐다.
혼자 남겨진 할아버지에게 노래를 선물하는 손녀, 직장 동료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여인, ‘땡!’은 울렸지만 이미지 관리 때문에 함박웃음을 짓는 시장 등 무대에서 풀어내는 갖가지 사연이 훈훈하다. “영화가 잘 돼 계속 투자를 하고, 나중에 나이가 들면 제대로 된 작품을 연출하는 게 꿈”이라는 이경규의 희망사항이 흥행 대박으로 ‘딩동댕∼’을 울릴 수 있을까. 12세 이상 관람가.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