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부 법제처장 “입법자는 철학자처럼 생각하고 농부처럼 말해야 한다고 했지요”

입력 2013-04-23 20:39 수정 2013-04-23 22:10


“독일의 종교개혁자 루터는 고향의 어머니, 길거리 아이들, 시장 평민들의 언어로 ‘알기 쉬운 성경’을 만들고자 했다고 합니다. 또 독일의 법학자 예링은 ‘입법자는 철학자처럼 생각하고 농부처럼 말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입법자에게 주어진 최대의 명제는 법령문을 누구나 알 수 있게 쉽고 꾸밈없이 서술하는 것입니다.”

제정부(57) 법제처장은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국민 속의 법령, 국민 속의 법제처’를 강조했다. 지난 22일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제 처장은 “법은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해야 하며 정보의 불평등으로 인한 피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 “국민들이 법 정보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언론이 도와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제 처장은 만나자마자 대뜸 기자의 스마트폰을 보여달라고 했다. 기자의 스마트폰에 ‘국가법령정보센터’ 애플리케이션(앱)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한 제 처장은 웃으면서 “당장 설치하라”고 요구했다.

제 처장은 “법을 인용해 기사를 쓰는 기자는 물론 일반 국민들도 앱만 설치해 놓으면 언제 어디서든 법을 확인할 수 있다”며 “이제 ‘법을 몰라서’라는 말은 변명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법령정보센터(www.law.go.kr) 온라인시스템의 활용가치에 대해서도 열변을 토했다. 제 처장은 “이곳에는 총 4267건의 현행 법령과 정부수립 이후의 모든 법령,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판례, 행정심판 재결례, 지방자치단체의 조례·규칙, 훈령·예규·고시까지 법령과 관련된 총 161만 건의 정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월 평균 조회수가 1억 페이지를 돌파했다”며 “상당수 국민들이 이곳에서 법령 정보를 얻고, 활용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제 처장은 “현재 원문 자료 위주인 정보를 분류·가공해서 맞춤형 서비스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녀가 있는 직장 여성이 법령정보센터에서 성별과 나이·자녀 수 등의 조건만 입력하면 육아휴직이나 양육수당에 대한 맞춤형 법령정보가 검색되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제 처장은 또 “입법계획 수립단계부터 공포단계까지 정부 내 전 입법과정을 하나로 통합한 통합입법지원시스템을 구축해서 이것을 전부 국민에게 공개할 것”이라며 “국민들이 이 통합시스템에 접속해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법제처는 지난 8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불합리한 법령을 정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제 처장은 이에 대해 “법은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이법위인(以法爲人)의 정신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PC방에서 컵라면을 판매하면서 뜨거운 물을 부어주면 식품위생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과태료를 부과했던 사례를 예로 들며 “법 가운데 국민의 일상생활이나 경제활동을 불편하게 하는 사항이 있다면 깔끔하게 정비하겠다는 얘기”라고 덧붙였다.

업무보고에서는 기본법 알기 쉽게 만들기도 법제처의 과제로 언급됐다. 제 처장은 “대통령께서도 ‘상대방과 통정(通情)한 허위의 의사표시는 무효로 한다’는 문구를 언급했지만 우리 국민의 86%는 법령이 어렵다고 느낀다는 조사가 나와 있다”며 “가장 큰 이유는 국민이 실생활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민법 등의 기본법이 정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민법에 나오는 ‘선의의 제3자’라는 표현을 예로 들었다. 일반적으로 ‘선의’란 ‘좋은 뜻’ 또는 ‘착한 마음’을 뜻하지만 민법에서는 ‘자신이 한 행위가 법률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모름’이라는 의미로 쓰인다는 것이다.

제 처장은 “바로 이런 것들이 국민들로 하여금 법을 어렵게 느끼게 하는 이유”라며 “충분한 논의와 검토를 거친다는 것을 전제로 이제는 민법과 같은 기본법을 알기 쉽게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법제처 사무관에서 시작해 30여년의 공직 생활 끝에 박근혜 정부 첫 법제처장에 오른 제 처장은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지만, 한편으로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새 정부의 정책과 공약이 차질 없이 이행될 수 있도록 입법적으로 잘 뒷받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법제처는 국민의 법제 도우미인 만큼 국민들께서 많이 활용해 달라”고 당부하며 인터뷰를 끝낸 제 처장은 기자가 스마트폰에 국가법령정보센터 앱을 설치하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나가는 문을 열어줬다.

정승훈 기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