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근미] 동생에게 보내는 격려

입력 2013-04-23 19:11


지난주 집안에 경사가 있었다. 동생의 목사 위임 감사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가끔 세습목회가 여론의 도마에 오르는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장로여서 동생은 특혜(?)를 받을 만한 여건이 아니었다. 동생은 혈연 지연 학연과 전혀 관련 없는 지역에 지원, 깐깐한 관문을 통과해 담임목사가 되었다.

세습 문제는 각 교회가 각각의 형편에 맞춰 결정할 문제라는 게 내 생각이다. 하지만 이태 전쯤 유명 목사님을 인터뷰할 때 세습으로 인해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당시 은퇴를 앞두고 있던 그 목사님에게 후임 목사 선정에 대해 질문하자 “왜 그 문제에 관심을 갖느냐”며 언짢아했다. “아들이 후임 목사가 된 교회가 600개다. 이름이 알려진 교회만 공격받는다”는 말도 했다. 얼마 후 그 목사님의 아들이 그 교회를 이어받았고 한동안 시끄러웠다. 당시 동생이 목회지를 찾으려고 할 때라 600개 교회에 대해서는 꿈도 꾸면 안 되는 현실이 솔직히 좀 억울했다.

동생이 담임목사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후임 목사 선정이 전 교인의 축제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생은 서류 전형을 통과해 6명의 후보에 들었고, 설교와 치밀한 면접심사 후 최종 2명에 올랐다. 곧이어 장로님들이 각각의 후보 교회를 방문해 공개적으로 검증하고 몇몇 성도들을 찾아가 암행을 하는 등 철저한 행보를 마친 뒤 교회에 보고했다. 이후 전 교인 투표를 실시해 최종 결정을 했다. 모두가 담임목사 선정에 참여했으니 다함께 교회를 이끌어가야 할 책임을 안게 된 것이다.

신학교 때부터 교육전도사로 나섰던 동생을 죽 지켜보면서 목사로 사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느꼈다. 정작 당사자는 일반적인 기준이나 압박에 시달리지 않으면서 즐겁게 생활했다. 30대 후반에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유학을 떠나더니 그곳에 빈민교회를 설립해 쉽지 않은 경험을 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쌍둥이를 입양했을 때는 가족 모두가 어리둥절했었다. 담임목사 자리가 쉽게 나지 않아도 “때가 차야 가게 된다”며 느긋하더니 올해 결실을 맺었다.

동생은 담임목사가 되면 실천하고 싶었던 7가지를 위임 감사예배에서 밝히며 열심히 달리겠다고 다짐했다. ‘한 영혼의 소중함을 결코 잊지 않고 영혼구원의 현장에 항상 있겠다’는 것이 첫 번째 약속이다. 막중한 소명을 안고 다시 출발선에 선 동생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이근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