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지형은] 두려움의 감옥

입력 2013-04-23 19:12


북한의 도발 위협이 완화되어 다행이다. 그러나 결코 끝난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최근 미국 국가정보원 제임스 클래퍼 국장이 현재 한반도 상태가 1968년의 푸에블로호 피랍과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때보다 긴장감이 높지 않다고 했다. 현 상황의 열쇠를 쥐고 있는 나라의 정보기관 핵심자의 발언이다. 휴전 이후 한반도의 긴장이 가장 높았던 때는 아마 1993년 미국이 북한의 영변 핵시설을 폭격하려던 시기일 것이다.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특수성 안에서 한반도 상황은 여러 종속변수가 맞물려 있다. 그래서 복잡하고 해법도 간단하지 않다. 남북을 비롯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모두 기본적으로는 종속변수다. 이들 가운데 어느 한 나라도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비교적’ 독립적인 위치에 있는 나라가 미국과 북한이다. 클래퍼 국장이나 다른 전문가들 말처럼 북한의 최근 위협이 내부용이라 하더라도 북한은 6자회담 관련국 중에서 독립변수의 가능성이 강하다. 미국도 그렇다. 미국의 정책적 틀은 한반도에 영향력이 크다. 1993년이 가장 긴장이 높았던 때라는 얘기도 이런 맥락이다.

해법 찾기 어려운 한반도 상황

문제는 우리가 독립변수적 가능성을 키워 남북문제에서 주도적이 되는 것이다. 최근의 긴장 국면에서 우리 사회의 반응을 두고 불감증과 침착이라는 두 판단이 엇갈렸다. 초기에는 불감증이라고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침착하다는 평가가 많아진 듯하다. 정부의 대응이 침착했다고 점수를 주는 평가가 많다.

민간 차원을 제외하고 보면 최근에 시작된 출구 전략은 미국에서 시작했다. 우리 정부는 갑자기 선회한 것으로 비쳐져 어느 정도 체면을 구긴 점이 없지 않고, 정부 내의 입장 혼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독립변수요 상대적으로 우리가 종속변수라는 것은 현실이다.

정부, 기업, 민간 차원 등 모든 역량을 고려한 ‘우리’가 남북관계에서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평화의 독립변수 역할을 높일 수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 프로세스’란 표현에 걸어 생각해본다. 기본적으로 신뢰다. 신뢰는 경쟁과 대립과 적대 관계에 있는 당사자 가운데 어느 하나가 먼저 믿어주는 데서 시작된다. 상황이 좋은 쪽으로 가면 먼저 믿어준 쪽이 명분과 주도권을 쥐게 된다. 그리고 프로세스다.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다. 참고 기다리고, 수틀리는 상태에서도 판을 뒤엎지 말아야 한다.

이 길로 가는 데서 아주 실제적인 문제가 정책 결정권자들의 마음이다. 지난 주간에 우리나라 박 대통령을 비롯하여 주변국 지도자들 마음의 흐름을 위해 기도했다. 그들 마음에 평화와 공존에 대한 용기와 확신이 꺾이지 않도록, 그들이 매일 자신을 성찰하여 내면의 평정과 사람에 대한 희망이 흔들리지 않도록, 그리고 그들이 산처럼 무거운 공적인 직무 앞에서 어떤 방법으로든 ‘기도라는 것’을 하도록.

공존·평화에 대한 용기 가져야

두려움을 가지면 진다. 두려움은 분노로, 분노는 파괴로 이어진다. ‘두려움에서’ 빠져나올 것인가, 계속 그 미궁으로 빠져들 것인가가 문제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가치관과 세계관의 문제인데 지도자들에게야말로 이런 문제에 대해 확고한 철학이 필요한 것 아닌가.

‘가장 오래된 감옥은/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두려움//가장 큰 감옥은/세상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두려움//가장 무서운 감옥은/다른 이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두려움//거의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은/모든 사람을 경쟁자 적대자로 보고/그로써 느끼는 두려움/이로써 형제자매는 실종되고//가인의 두려움/오늘날의 감옥//그러나 감옥은/거기에서 나온다는 것 때문에 존재한다’

공존과 상생과 평화, 사람 사랑과 미래의 희망에 대한 큰 용기를 가질 때다.

지형은 성락성결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