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초엔저 시대 준비돼 있나

입력 2013-04-23 19:08

달러당 100엔 시대는 세계 시장에서 일본과 주로 경쟁하는 우리에겐 재앙이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들은 지난 주말 워싱턴에서 열린 연례회의에서 일본의 양적완화 정책에 면죄부를 줬고, 일본 중앙은행은 26일 열리는 통화정책 결정회의에서 추가 유동성 강화 조치를 내놓을 것으로 예상돼 100엔을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다. 100엔 시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고환율정책으로 달콤한 승자독식효과를 누렸던 삼성전자, 현대차 등 국내 대표 기업들이 고통의 시대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이미 엔저 공습으로 일본 기업들은 이익이 불어나는 반면 국내 수출 대기업들의 수익은 뚝뚝 떨어지고, 수출 중소기업들은 한계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엔저가 본격화한 지난해 4분기 대미 수출은 3.4% 줄어든데 이어 올해 1분기에는 4.6% 급감했다. 일본 제품과 직접 경합하는 자동차, 전자, 기계, 철강 등의 수출 감소는 특히 심각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달 초 96엔이었던 엔·달러 환율이 100엔이 되면 국내 기업 수출이 3.4%, 110엔으로 상승하면 11.4% 각각 줄어들 것으로 본다. 아직까지는 북한 리스크로 원화도 1100원대에서 동반 약세를 보여 완충역할을 하고 있지만 엔저가 가속화하는 가운데 원고(원·달러 환율 하락)가 가파르게 진행될 경우 우리 기업들이 입을 피해는 막대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기업들이 엔저 공습에 숨이 턱턱 막히는데도 정부가 드러내놓고 지원사격을 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무제한 돈을 풀어 맞불을 놨다간 외국자본의 급격한 유출을 걱정해야 할 판이고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했다간 자본통제국이란 오명을 뒤집어 쓸 수 있다.

외환시장 변동성을 예의주시하면서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지원책을 적절히 강구해야 한다. 우선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도입한 거시건전성 3종 세트를 면밀히 재점검해 규제를 강화할 부분은 강화해야 한다. 단기 해외투기자본 규제를 위한 한국형 토빈세(금융거래세) 도입도 서둘러야 한다. 독일 프랑스 등 유럽연합(EU) 11개국도 내년부터 토빈세를 도입키로 한 마당에 우리 시장만 국제 환투기 세력의 놀이터로 방치할 수는 없다.

기업들은 상당 기간 지속될 초엔저 시대에 대비해 품질혁신과 기술개발로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가격으로 승부하던 시대는 지났다. 도요타 등 일본 기업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70엔대의 초엔고 파고를 넘기 위해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했다. 생산기술을 혁신하고 신흥국 시장 개척에 나서면서 세계 최고·유일 전략에 매달렸다. 우리도 초엔저 시대를 위기가 아니라 체질개선을 통해 세계 일류로 도약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