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일본이 존경받는 나라 됐으면

입력 2013-04-23 19:04


일본이 정말 존경받는 나라 됐으면

이 나라 사람들은 배려심이 넘치고 싹싹하다. 노벨상 수상자를 19명이나 배출할 만큼 기초과학과 인문학 수준이 높다. 2차 대전 후 단 한 번도 전쟁에 뛰어들지 않았을 만큼 평화를 애호한다. 지난 20여년의 장기불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제력이 만만치 않다.

바로 이웃나라 일본 얘기다. 우리가 대외적으로 한국 소개하면서 역동성에 초점을 맞춰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를 자랑할 때 일본은 차분하면서도 세련미를 추구한다는 ‘쿨 저팬(Cool Japan)’을 내세웠다. 여기까지만 보면 우리는 참 좋은 이웃을 둔 것 같다.

하지만 일본의 모습은 더 있다. 침략과 지배, 수탈과 억압으로 요약되는 과거사가 그것이다. 사실 과거 인접국 간 전쟁과 지배·피지배는 흔한 일이다. 문제는 과거에 대한 책임의식, 즉 진정성을 담은 반성과 사죄 여부에 있다. 그런데 일본은 ‘쿨 저팬’을 내세우면서도 과거사에 대해서는 차분하지도 세련되지도 않다.

일본이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거나 사과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예컨대 일본군위안부에 대해서는 1993년 ‘고노 담화’에서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했으며,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 식민지지배와 과거 침략의 역사에 대해 반성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문제는 반성과 사죄를 말하면서도 정권 실세들은 정반대의 발언과 행동을 거듭해왔다는 점이다.

주요 정치인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도 그 중 하나다. 엊그제 내각의 2인자이자 총리까지 역임했던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를 비롯해 주요 각료들이 참배한 데 이어 23일엔 여야 국회의원 168명이 집단으로 참배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과거의 침략전쟁을 칭송하는 행위다. 그곳은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돼 있을 뿐 아니라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신으로 떠받드는 현장이 아닌가.

앞에서는 침략사로부터의 단절을 외치면서 뒤로는 그것을 옹호하는 행태는 자기모순적일 뿐 아니라 자존감을 스스로 파괴하는 행위다. 과거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미래를 새롭게 열어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음을 뜻할 뿐 아니라 이웃나라에 대한 열린 자세를 공개적으로 표방하는 것이다. 이런 평범한 진리가 작동되지 않는 일본을 존경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일본 정부의 진정성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1995년 일본이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해 만든 아시아여성국민기금도 비슷한 경우다. 일본 정부와 국민들이 성금을 모아 위안부들에게 총리의 사과편지와 함께 보상금을 전하는 이 방안은 한국에서는 “법적 배상을 회피하려는 꼼수”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국제적으로는 적잖은 반향을 불렀다. 특히 유엔 인권위원회 등에서는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원만한 극복을 위해 민관이 협력해 노력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2006년 등장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1차 내각 때부터 위안부의 실체를 부인하는 듯한 일본 정치권의 망발이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일본에 대한 국제적 평판은 급격하게 추락했다. 급기야 2007년 아시아여성국민기금은 해산됐고 그해 여름 미 하원에서 일본계인 마이크 혼다 의원이 중심이 돼 ‘일본군강제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미국 곳곳에서 위안부 위로비가 제막되는 중인데 일부 일본 정치인들이 위안부 추모비 제막을 막겠다고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국제적으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뉴스가 되고 있다. 국제교류는 법과 민주주의에 기반을 둬야 한다는 이른바 가치관외교를 강조하는 일본이 정작 제 눈의 들보는 전혀 못 보고 있는 꼴이다.

2015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이다. 일본은 이 대전환기를 지금처럼 역사문제 문외한의 입장에 서서 그저 그렇게 흘려보낼 것인가. 해결의 칼자루는 일본의 정치권과 일본사회에 있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서 자유로워질 수만 있다면 국제사회에서 정말 존경받는 나라가 될 수 있을 텐데…. 그날이 언제일지 매우 궁금하다.

논설위원 choyr@kmib.co.kr